수학계의 경고, 이해 없는 정답의 축적
지난 10월 9일, 필즈상 수상자인 수학자 테렌스 타오는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칼텍)에서 '2.0' 강연을 진행했다. 인공지능이 증명의 타당성을 기계적으로 검증할 수 있게 되면서, 난제로 여겨지던 수학 문제들에서 유의미한 성과가 도출되고 있다. 그러나 타오는 단순히 정답의 양이 늘어난다고 해서 인간의 이해도가 깊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쌓여야 할 인간의 지적 이해가 오히려 약화될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했다.
만약 정체를 알 수 없는 화학물질의 조합으로 임상 3상을 통과한 암 치료제가 등장했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이 약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전문가가 단 한 명도 없다면 어떨까. 타오의 질문은 기술의 작동 원리를 인간이 완전히 파악하기 전에 결과물부터 사용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기술 발전이 가져온 지적 전문성의 위기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그 위험성을 둘러싼 논쟁은 반복되어 왔다. 과거의 자동화 논쟁이 주로 생산직이나 단순 반복 업무에 집중되었다면, 이제는 고도의 지적 능력이 요구되는 수학의 영역까지 그 논의가 확장된 상태다. 실제로 지난 10월 6일, AI를 활용해 작성한 722편의 수학 논문 초고가 한꺼번에 공개되자 수학자 단체는 AI와의 협업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추상적이고 연역적인 사고가 핵심인 수학은 인간의 전문성이 가장 빛나는 분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AI의 진보는 기술이 인간의 지적 영역을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수학뿐만 아니라 마케팅 현장에서도 익숙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존의 숙련도와 지식만으로는 급변하는 기술에 대응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수학적 증명을 찾아가는 과정은 여러 개념을 조합해 해법을 도출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해킹'과 유사하다. 인간 한 명이 가진 전문성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어 다양한 분야의 개념을 하나의 증명에 엮는 데는 막대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 AI는 인간이 제한된 시간 내에 시도하기 어려운 광범위한 탐색을 가능하게 만든다.
'안티프래질'한 성과와 마케팅의 확장성
타오의 사고실험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저서 '안티프래질'에서 언급한 '새에게 나는 법을 가르친다'는 비유와 맞닿아 있다. 이는 현장의 시행착오를 통해 먼저 성과를 낸 뒤, 나중에 학계에서 이론을 덧붙이며 마치 이론이 성과를 이끌어낸 것처럼 인과관계를 뒤집는 현상을 꼬집는다. 의학계에서도 아스피린이 1899년부터 판매되었음에도 그 작용 원리는 1971년에야 밝혀진 사례처럼, 이해가 활용보다 늦게 따라오는 경우가 존재한다. 물론 이는 검증을 생략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이해와 검증은 별개의 문제라는 뜻이다.
마케팅 분야 역시 지난 10년간 모바일과 데이터 기술의 확산으로 인해 그 실행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했다. 이제는 창의적인 광고 소재를 만드는 것을 넘어, 데이터를 연결하고 고객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시험하는 기술적 역량이 필수적인 '기술업'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기술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두 가지다. 첫째는 기존의 방식을 부정하고 더 나은 대안으로 교체할 수 있는 '자기 파괴성'이며, 둘째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양을 처리하는 '확장성'이다. AI는 광고 소재를 대량으로 생성하고 수많은 조합을 테스트함으로써 이러한 확장성을 극대화한다.
설명 가능성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환경
타오의 논의는 마케팅의 핵심 질문으로 이어진다. 성과가 발생하는 이유를 인간이 반드시 완벽히 설명해야 하는가? 마케팅에서는 소재의 효과를 전부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그 가치를 활용할 수 있다. 만약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로 실험의 규모나 복잡성을 제한한다면, 오히려 성과가 저조해질 수 있다. 따라서 설명 가능성 그 자체가 마케팅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소비자의 행동은 매우 복잡한 요소들이 얽혀 있어 통제된 실험만으로는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필자가 코카콜라를 마시는 이유 역시 취향, 습관,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에 몇 가지 요인으로 정의하기 힘들다. 캠페인의 성공을 특정 모델이나 시점 덕분이라고 해석하더라도, 시장과 트렌드는 이미 변해 있을 수 있으므로 과거의 성공을 설명하는 데 매몰되기보다 변화된 환경에서 다시 폭넓게 시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율주행, 코딩, 제약 개발, 그리고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인간이 이해하는 방식으로만 개선해야 한다'는 전제는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새가 공기역학 이론을 몰라도 본능적으로 날 수 있듯이, 이론은 비행의 결과물을 설명하는 도구일 뿐 비행의 출발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에이전틱 에이전시를 향한 도전
조경상 대표가 이끄는 회사는 AI 에이전트와 자체 솔루션을 결합한 '에이전틱 에이전시'를 목표로 삼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배달의민족, 무신사 등과 350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조 대표는 우아한형제들 전략기획 담당과 숨고 공동 창업을 거쳤으며, 딜로이트컨설팅과 닐슨에서 데이터 분석 역량을 쌓았다. 그는 애리조나대학교에서 수학과 경영학을,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통계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