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실태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 거주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10명 중 4명은 신체적 고통을 느껴도 병원 진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이들 중 70%가 넘는 인원이 하루 9시간 이상의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절반에 가까운 노동자들은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구경북이주연대회의는 29일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에서 ‘대구경북지역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삶: 우리 곁의 뚜안이들을 마주하기’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고,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출입국 관리 당국의 단속 과정에서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은 베트남 국적 노동자 뚜안 씨의 1주기를 기해 실시됐다.
고인이 된 뚜안 씨는 유학 비자로 입국해 대학 학업을 마친 뒤 구직 비자(D-10)를 취득해 체류하던 중이었다. 그는 대구 성서공단 소재의 제조업체에서 일했으나, 해당 비자로 제조업 취업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일하던 중 지난해 10월 28일 단속 현장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열악한 노동 환경과 제도적 결함
연대회의는 지난 5월부터 9월 중순까지 한국어를 포함해 총 15개 언어로 설문조사를 수행했다. 당초 계획했던 300명을 크게 상회하는 613명의 인원이 조사에 응답하며 높은 참여도를 보였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42.36%가 아플 때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병원 방문을 가로막은 가장 큰 원인은 의료비 부담(57.14%)이었으며, 통역의 부재(24.24%)와 시간 부족(21.13%)이 뒤를 이었다. 단속에 대한 공포(20.08%)와 병원 정보 부족(15.53%)도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특히 응답자의 44.32%는 최근 2년 내에 건강검진을 단 한 차례도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 환경의 가혹함도 수치로 입증됐다. 응답자 중 70.18%가 하루 9시간 이상 근무했으며, 30%가량은 11시간을 초과해 일하고 있었다. 주 6일 이상 근무하는 비율도 59.58%에 달했다. 근로 계약의 불투명성도 심각했다. 미등록 체류 기간 중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비율이 68.96%에 육박했다. 임금 체불 경험은 44.33%로 나타났으며, 퇴직금을 받지 못하기 위해 계약 기간을 인위적으로 쪼개는 사례나 업무 중 부상에 대한 치료비를 노동자 본인이 전액 부담하는 사례도 확인됐다.
제도 개선을 향한 목소리
조사 대상자 중 97.02%는 체류 자격이 정규화될 기회가 생긴다면 신청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연구팀은 이들이 2~3년 내에 본국으로 귀국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응답이 영구 정착보다는 체류 기간 중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고 안정적으로 일하기 위한 요구라고 분석했다.
연대회의 측은 미등록 상태가 개인의 선택이 아닌, 불안정한 비자 체계와 이주노동을 착취하는 구조적 모순이 낳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어 단속 위주의 현행 정책을 중단하고, 모든 노동자의 인권과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체류 자격의 정규화와 제도적 보완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