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기술 패권 경쟁 속 흔들리는 소재 자급률

미국과 중국이 인공지능, 반도체, 로봇, 우주 기술 등을 매개로 치열한 패권 다툼을 벌이는 가운데, 첨단 과학기술이 국가 안보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한국은 독자적인 발사체 기술을 확보해 인공위성을 우주로 보내는 단계에 이르렀으나, 위성과 발사체 제작에 필수적인 핵심 복합소재는 여전히 일본 등 해외 공급망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품 가공 기술은 갖췄을지라도 원천 소재의 수급이 차단될 경우 생산 라인 자체가 멈출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양철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우주용복합소재연구단장은 소재 공급 업체들이 시장에서 '갑'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일본 등으로부터 소재 공급이 중단될 경우에 대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연구단은 우주 환경에 최적화된 원소재 개발부터 달 탐사 로버용 소재의 성능 검증까지 아우르는 국산화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삼고 있다.

탄소섬유강화복합재 국산화와 극한 환경 극복

연구단의 핵심 과제는 탄소섬유강화복합재(CFRP)의 국산화다. 탄소섬유를 고분자 수지와 결합한 이 소재는 가볍고 강력한 특성을 지니지만, 우주급 신뢰성을 갖춘 제품은 선진국 의존도가 높다. 특히 탄소섬유와 수지를 결합한 중간재인 '프리프레그(Prepreg)'와 우주용 고스펙 수지의 확보가 관건이다. 국내 기업들이 부품 제조 기술은 보유하고 있으나, 설계와 제작의 근간이 되는 원소재의 해외 의존도가 높다는 것이 양 단장의 설명이다. 우주용 수지는 가스가 배출되어 렌즈를 오염시키는 '아웃가싱' 현상을 막아야 하며, 극심한 온도 변화에도 형태가 유지되어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2008년 설립 이후 탄소와 세라믹 기술을 쌓아온 전북분원은 임무중심연구소로 전환하며 이러한 역량을 우주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양 단장은 기존에 연구해 온 소재를 가장 가혹한 우주 환경에서 검증함으로써, 세계 최고 수준의 물성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밝혔다.

달 탐사 로버를 향한 단계별 기술 확장

연구단의 장기적 지향점은 달과 화성 표면을 주행하는 탐사 로버용 소재 개발이다. 극한의 먼지와 온도 변화를 견뎌야 하는 로버 기준의 기술을 확보하면 다른 우주 장비에도 적용 가능한 고성능 소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단은 인공위성을 통한 단기 실증을 시작으로 우주 데이터센터 등으로 범위를 넓힌 뒤, 국가 우주 탐사 로드맵에 맞춰 로버에 최종 적용할 계획이다. 양 단장은 향후 인류의 우주 정착과 로봇 활용이 본격화되면 소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체적으로는 금속의 무게를 줄이는 복합소재 개발에 집중한다. 알루미늄보다 30% 가벼운 구조체, 방사선 차폐 성능을 10배 높인 소재, 열전도율을 50% 개선한 소재 등을 목표로 한다. 특히 붕소(B)의 중성자 흡수 특성을 이용한 차폐 소재 개발을 위해, 가공이 어려운 붕소화물에 탄소나노튜브(CNT)를 섞어 유연한 섬유 형태로 만드는 기술을 확보했다. 이는 박진성 책임연구원이 강조한 연구소만의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구리 대신 열을 전달하는 서멀 스트랩이나 경량 전선 등에도 활용될 예정이다.

스페이스 헤리티지 확보와 실증 인프라 구축

우주 산업 진입을 위해서는 성능만큼이나 '스페이스 헤리티지(Space Heritage)', 즉 실제 우주에서의 사용 이력이 중요하다. 한 번 발사하면 수리가 불가능한 위성의 특성상 리스크가 있는 신규 소재 도입을 꺼리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연구단은 2026년부터 2035년까지 소재 개발, 부품 제작, 시스템 통합 실증으로 이어지는 단계별 로드맵을 수립했다. 기업들이 개발한 소재가 실제 위성에 탑재되어 사용 기록을 남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진공, 극한 온도, 플라즈마 등 5가지 우주 환경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100억 원 규모의 통합 시험 챔버 구축을 추진 중이다. 현재 흩어져 있는 시험 시설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고, 기업들이 막대한 비용과 실패 위험을 감수하지 않도록 KIST와 같은 출연연이 개발부터 검증까지의 표준 프로토콜을 주도하며 위험을 분담하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