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마비 속 뒤엉킨 관제 지시
스페인 톨레도 우르다 지역에서 발생해 최소 68명의 목숨을 앗아간 고속열차 추돌 사고의 원인이 안전장치 결함과 관제사의 오판이 결합된 결과로 드러났다. 29일(현지시각) 스페인 매체 엘파이스가 공개한 관제사와 기관사 간의 교신 기록에 따르면, 열차 안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비상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관제센터가 후속 열차에 무리한 운행 허가를 내린 정황이 포착됐다.
사고의 발단은 28일 오전 8시 30분경 발생한 열차제어시스템(LZB)의 통신 두절이었다. 선로와 열차 사이의 실시간 정보를 주고받으며 속도를 제어하고, 제한 속도 위반 시 자동으로 제동을 거는 이 자동 보호장치가 멈추자 렌페의 아베(AVE)와 민영 이리오(Iryo)를 포함한 고속열차 6대가 일제히 정지했다.
시계운전 원칙 무시한 과속 주행
정부 당국은 시스템 장애 시 기관사가 시속 40km 이하로 서행하며 전방을 직접 확인하는 ‘시계운전’을 수행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위치 데이터 분석 결과, 정차 중이던 이리오 열차를 들이받은 아베 열차는 출발 직후 가속을 시작해 시속 200km를 상회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정부가 제시한 안전 운행 지침을 완전히 벗어난 수치다.
골든타임 놓친 관제센터의 대응
오전 8시 36분경 마드리드 관제센터는 이리오보다 약 25km 뒤따르던 아베 열차에 시스템을 재가동한 뒤 정상 운행을 이어가라는 지시를 내렸다. 기관사가 “정상 운행을 하라는 것이냐”고 재차 확인했음에도 관제사는 “그렇다”고 답변하며 속도를 높일 것을 종용했다. 반면, 정작 충돌 대상이었던 이리오 열차는 5분이나 늦은 8시 41분에야 정상 운행 지시를 받았으며, 자동 안전장치 재시작에 실패해 출발조차 못 하는 상태였다.
충돌 5분 전인 8시 48분, 이리오 기관사는 신호기 앞에 멈춰 있다고 보고했으나 관제사는 “문제가 생기면 다시 연락하라”는 식의 모호한 답변만을 남겼다. 엘파이스의 분석에 따르면 관제센터가 아베 열차에 긴급 정지 명령을 내린 기록도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 방어 기회조차 확보하지 못한 아베 열차는 8시 53분 이리오 열차를 충돌하며 참사로 이어졌다. 향후 조사에서는 시스템 장애 이후 선행 열차보다 후속 열차에 먼저 운행 지시가 내려진 경위와 정차 보고에 따른 관제 대응의 적절성이 집중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