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약 파이프라인 내 천연물 비중 1.24%로 급락
천연물 유래 의약품을 향한 한국과 미국의 행보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국내 제약 산업에서는 신약 개발 파이프라인 중 천연물 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1%대에 머물며 후속 개발 동력이 약화된 모습이다. 반면 미국은 식물 기반 의약품의 개발을 가로막는 규제 장벽을 허물고, 독점권을 확대해 투자 유인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자연계 원료에서 유효성분을 추출하거나 복합 성분을 활용하는 천연물 의약품은 개발 난도가 매우 높다. 성분이 혼합된 원료의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하면서 안전성과 효능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신약개발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신약개발 파이프라인 2,162건 중 천연물 신약은 단 27건(1.24%)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바이오 신약은 1,149건(53.1%), 합성 신약은 932건(43.1%)을 기록하며 대다수를 점유했다.
낮은 사업성과 불리한 약가 제도…제도적 보상책 부재
높은 개발 부담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이점은 낮다. 기존 생약을 활용해 추출물의 규격이나 조성을 재설정하는 경우, 신약이 아닌 자료제출의약품으로 허가받는 사례가 많다. 이 경우에도 독성 및 약리 시험, 임상 자료 등 방대한 데이터를 제출해야 하지만, 정작 건강보험 약가 산정 시에는 기존 약제와의 비교나 가중평균가격이 기준이 되어 충분한 보상을 받기 어렵다. 임상에서 기존 치료제보다 뛰어난 효과를 보여도 별도의 가격 우대를 받을 근거가 부족한 실정이다.
종근당의 위염 치료제 '지텍'이 보여준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육계건조엑스를 성분으로 하는 지텍은 2022년 7월 자료제출의약품으로 허가를 획득했다. 임상 3상 결과 기존 애엽추출물 제제보다 위점막 미란 개선에 우월한 효과를 입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책정된 보험약가는 기존 치료제와 동일한 정당 95원으로 결정됐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기술력을 바탕으로 도전을 이어가는 기업들이 있다. 엠테라파마는 AI 기반 가상인체 시스템인 '싸이엠토믹스' 플랫폼을 통해 파킨슨병 치료제 후보물질인 'MT101'을 발굴 중이다. 아리바이오는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경도인지장애 치료제 'AR1004'의 임상 2상 진입을 준비하며 아시아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제5차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촉진계획(2025~2029)'을 통해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지만, 기업의 투자 회수를 보장할 구체적인 보상책은 아직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미국 FDA의 규제 완화와 12년 독점권 추진
반면 미국은 개발 초기 단계부터 규제 장벽을 낮추는 데 집중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천연물 의약품의 품질 관리와 임상 설계의 어려움을 인지하고, 지난 9월부터 규제 개선을 위한 의견 수렴에 착수했다. 특히 제조 배치 간의 품질 편차를 줄이는 방안과 개발 기간 단축 등을 집중 검토 중이다. 또한 지난달에는 유럽의약품청(EMA)과 천연물 의약품 규제 체계를 주제로 사상 첫 공동 워크숍을 열어 상호작용 문제 등에 대한 협력을 논의했다.
의회 차원의 강력한 지원책도 등장했다. 로런 보버트 미국 하원의원 등이 발의한 '2026년 천연물 신약 개발 촉진법안(H.R. 10150)'은 특정 천연물 신약에 대해 12년간의 시장 독점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법안이 통과되면 FDA는 해당 기간 동안 관련 복제약이나 후속 의약품의 신청 효력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시장을 보호하게 된다.
글로벌 연구 교류의 장, 강릉 천연물 바이오 국제 콘퍼런스
해외의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국내에서도 산업화 가능성을 모색하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오는 11월 4일부터 6일까지 강릉컨벤션센터에서 '제2회 강릉 천연물 바이오 국제 콘퍼런스'가 개최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시, 조선비즈 등이 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천연물, 한계를 넘어 가능성으로'를 주제로 13개국 17명의 해외 연사와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행사 5일 차에는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신약 발굴, 화학·구조생물학, 중개연구, 기능성 소재 생산 등 6개 세션이 마련된다.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및 산업화에 이르는 전 과정을 심도 있게 다루며 천연물의 미래 가치를 조명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