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시대 노예 백 명과 현대인의 노동력

인공지능(AI) 시대를 준비하며 뒤처지지 않기 위해 라틴어 학습을 시작했다. 그런데 접한 교재의 내용이 매우 이색적이었다. 로마의 한 가정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부모와 자녀 세 명 외에 무려 백 명의 노예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오타가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으나, 확인 결과 백 명이라는 숫자는 사실이었다.

문득 현대인의 생활 양식이 과거 노예를 쉰 명 이상 거느렸던 귀족의 삶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물, 보일러의 온기, 세탁기와 자동차 같은 기술적 혜택은 과거라면 수십 명의 노예가 수행해야 했던 노동을 대신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 기술이 제공하는 편의를 정확히 노예 몇 명의 노동력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마력에서 에너지 노예로 이어지는 노동의 환산

기계가 인간이나 동물의 노동을 어느 정도 대체하는지 수치화하려는 노력은 18세기 제임스 와트로부터 시작되었다. 증기기관을 판매하던 그는 자신의 기계가 말 몇 마리의 힘을 내는지 증명할 단위로 '마력(horsepower)'을 고안했다. 이는 새로운 기술이 육체적 노동을 얼마나 대체하는지 보여주는 척도가 되었다. 이후 1940년, 버크민스터 풀러는 이 개념을 인간의 노동으로 확장해 '에너지 노예'라는 용어를 제시했다. 그는 기계와 화석연료가 수행하는 역할을 인간의 노동력으로 계산했으며, 당시 세계 인구 1인당 에너지 노예는 약 38명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AI 에이전트 시대, 지적 노동의 대리인

인터넷의 등장을 지나 이제 AI가 등장하면서 인류는 육체적 노동을 넘어 지적 영역까지 기계에 맡기게 되었다. AI는 자료 수집과 요약, 번역은 물론 보고서 작성까지 수행한다. 이러한 변화를 고려하면 오늘날 개인이 활용할 수 있는 노동력은 라틴어 교재 속 로마 귀족이 부리던 백 명의 노예에 육박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다양한 AI 에이전트와 서비스들이 명령을 기다리며 출시되고 있어, 의욕 있는 이들이라면 과거에 불가능했던 거대한 프로젝트에도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주인으로서 마주한 새로운 위기감

명령을 기다리는 수많은 AI 에이전트의 모습은 장관이겠지만, 정작 이를 사용하는 개인은 당혹감을 느낄 수 있다. 기업들은 효율성을 위해 노동자를 AI로 빠르게 교체하고 있으나, 개인의 입장은 다르다. 미디어는 백 명분의 노동력을 부릴 수 있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그 힘을 어떻게 활용할지 몰라 망설이곤 한다. 단순히 요약이나 슬라이드 제작 같은 단편적인 업무에 만족하다가도,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AI의 속도 앞에서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과거 노예의 능력과 자신의 능력을 비교할 필요가 없었던 로마 시대의 주인은 겪지 않았을 감정이다.

과거 로마에서 노예의 수는 곧 사회적 위세를 상징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역시 보유한 AI의 수와 이를 제어하는 능력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아마 미래의 교과서는 이 시대를 이렇게 기록할지도 모른다. “그 집에는 성인과 아이들이 살았으며, 총 213인력(人力)에 달하는 9개의 AI 에이전트가 함께 거주했다”라고 말이다. 주한나 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원·데이터 과학자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