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지방선거 종료 이후 경제학계에서는 미뤄왔던 구조개혁을 추진할 적기가 찾아왔다는 낙관론이 제기되었다. 향후 2년간 전국 단위 선거가 부재한 점과 반도체 산업에서 발생한 초과 세수로 인해 재정적 여력도 충분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5개월이 지난 현재, 정치권은 정책적 결단 대신 내부 갈등과 정쟁에 매몰되어 있으며, 정부 또한 정책 추진력을 잃은 채 현안 대응에만 급급한 실정이다.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한 '메가 프로젝트'의 필요성
김성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최근 인터뷰를 통해 대한민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 상황을 진단했다. 그는 미·중 패권 다툼과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라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한국 경제에 허락된 '5년의 숨구멍'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부의장은 과거 중화학공업 육성이나 정보화 전략처럼 국가적 비전을 담은 종합 경제 전략이 실종된 상태라고 지적하며, 반도체 수퍼사이클을 활용해 AI 역량과 차세대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메가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산업 육성을 넘어 규제 완화와 전력·용수 등 핵심 인프라 문제를 통합적으로 해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특히 반도체 제조 공정(Fab)뿐만 아니라 소재·부품·장비(소부장)와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생태계를 구축하고,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AI 전환(AX)을 가속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제도적 혁신과 인적 자원 양성이 병행되는 종합적인 전략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송전망 병목 현상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김 부의장은 현재 경제 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로 송전망 문제를 꼽았다. 2030년 완공 예정인 345kV 송전선로 중 70%가 아직 착공조차 되지 않았으며, 변전소 건설을 둘러싼 지역 주민의 반대도 심각하다. 그는 기존 행정 속도로는 반도체 공장 완공 후에도 전력 공급이 불가능한 사태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하며, 원전 건설에 준하는 파격적 지원과 주민 수용성을 높일 참여형 공모 방식 도입을 주장했다.
노동시장 문제에 대해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고착화된 이중구조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극심한 격차를 줄이기 위해 호봉제 중심의 연공급 체계를 탈피하고, 개인의 역량과 생산성에 기반한 직무급제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만 이러한 구조개혁이 성공하려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청년 고용 절벽 대응과 정치권의 대표성 위기
청년층의 일자리 위기에 대해서는 실무 경험 제공과 AI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특히 기업이 청년 인력을 충분히 숙련시킬 수 있도록, 현행 2년으로 제한된 기간제 근로 기간을 노사 합의하에 최대 4년까지 연장하는 '2+2 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직업훈련 시 소득을 보장하고 양육 돌봄을 지원하는 '국민활동 급여제도'를 통해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수백만 명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현재 정치권이 미래 세대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는 심각한 대표성 위기에 처해 있다고 비판했다. 30대 이하 유권자가 30%를 차지함에도 국회의원 중 이들의 비중은 4.7%에 불과한 반면, 60대 이상 의원은 절반을 넘는 55.7%에 달한다는 것이다. 김 부의장은 기성세대의 진영 논리가 미래의 에너지를 억누르고 있다고 지적하며, 공천 및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청년들의 발언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거센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