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리국'이라는 기괴한 통제 시스템
연인 사이의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규칙을 정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서울 강서구의 한 반지하 주택에서 발생한 사건은 그 차원이 달랐습니다. 20대 후반의 IT 회사 직장인이었던 여성은 동거하던 네 살 연하의 남성으로부터 극심한 폭행을 당해 숨졌습니다. 이들의 관계 이면에는 '뚜리국'이라는 가상의 국가를 설정하고, 이를 운영한다는 명목하에 '국가 프로젝트(국프)'라는 이름의 기괴한 규칙들이 존재했습니다. 이 가상 국가의 입법, 사법, 금융 체계는 두 사람이 함께 설계했으나, 규칙 위반 여부를 판단하고 처벌을 집행하는 권한은 오직 남성에게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피해자의 휴대전화와 클라우드 계정에서는 이러한 통제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문서와 녹음 파일에는 거짓말을 할 경우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수 없으며, 처벌이 시작되면 어떠한 소명도 불가능하다는 식의 강압적인 지침이 담겨 있었습니다. 심지어 남성은 피해자를 채무자로 규정하고 1억 원의 보상을 요구하는 내용까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명명했습니다. 피해자가 남성의 까다로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 AI의 도움을 빌린 정황은, 그가 처했던 압박감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짐작게 합니다.
3시간 20분간 이어진 514차례의 무차별 폭행
사건 당일, 폭행의 발단은 집안 물건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다는 지극히 사소한 이유였습니다. 남성은 살림살이가 정해진 대로 접혀 있지 않다는 점을 문제 삼아 폭행을 시작했습니다. 홈캠 영상에 기록된 폭행은 무려 3시간 20분 동안 이어졌으며, 그 횟수는 514차례에 달했습니다. 가해자는 주먹과 발뿐만 아니라 고무망치 같은 둔기까지 동원했습니다. 피해자가 살고 싶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은 죽음을 언급하며 폭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구급대가 도착했을 때 여성은 이미 심정지 상태였습니다. 남성은 당일 오후 2시 24분경 직접 119에 전화해 여성의 의식이 없다고 신고했습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폭행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죽일 의도는 없었으며 우발적인 사고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부검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피해자는 갈비뼈 21개가 골절되고 주요 장기가 파열되는 등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법적 쟁점과 유가족의 고통
김보경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서 살인의 고의성을 판단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지적합니다. 남성은 '둘이 합의한 규칙'이라며 면죄부를 주장하지만, 사회 통념을 벗어난 가혹행위는 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또한, 사망에 대한 확정적 목적이 없었더라도 자신의 행위로 인해 사망할 수 있음을 인지했다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폭행의 지속 시간과 도구, 피해자의 상태 등을 고려할 때 단순 상해치사보다는 살인죄 적용에 대한 엄격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견해입니다.
한편, 가해자의 부모는 피해자가 가스라이팅을 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남성은 유가족을 평생 부양하겠다며 사죄의 뜻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이러한 일방적인 부양 약속이나 사과가 유가족의 고통을 대신할 수 없으며, 이미 발생한 범죄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 수도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는 사망 당일의 행위뿐만 아니라, 그간 지속되어 온 통제와 폭행의 정황들이 범행의 경위를 밝히는 중요한 근거로 다뤄질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