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 시대의 치명적 위협, 시간 비동기화

인공지능(AI)이 전력망을 총괄 제어하고 금융 거래의 핵심을 처리하는 현대 사회에서, 시스템이 공유하는 '시간' 정보가 단 몇 초만 어긋나더라도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시간 정보를 조작하는 공격이 자동화 기술과 결합할 경우, 개별적인 시스템 장애를 넘어 국가의 핵심 인프라 전반으로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정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연구센터장은 29일 서울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개최된 '타임넷 코리아 2026'에 참석해 '자동화 시대의 시간 비동기화 이슈와 국가안보'를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서로 다른 장비와 시스템이 동일한 기준 시각을 공유하도록 맞추는 '시간 동기화'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기술은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 서비스부터 통신 기지국, 금융 거래, 전력망, 나아가 군사 지휘통제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현대 사회의 모든 필수 영역에서 근간이 된다.

보이지 않는 공격, '스푸핑'과 '재밍'의 위험성

국가시간그룹장은 이날 발표에서 시간 오류가 실생활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설명하기 위해 해외의 교통 단속 사례를 제시했다. 2km 간격으로 배치된 두 대의 단속 카메라에 동일한 차량이 포착되었으나, 기록된 통과 시간 차이가 단 3초에 불과했던 사례다. 이를 토대로 주행 속도를 산출하면 시속 2400km라는 초음속 비행기 수준의 결과가 도출되는데, 이는 카메라 간 시각 동기화가 깨졌을 때 발생하는 전형적인 오류다.

윤 센터장은 시간 교란 공격이 일반적인 해킹과는 결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데이터 탈취나 시스템 즉시 중단처럼 눈에 띄는 방식이 아니라, 장비가 사용하는 시각 정보를 미세하게 틀어버려 잘못된 정보를 정상적인 것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세한 교란은 운영자가 단순한 기기 고장으로 착각하기 쉽다. 대표적인 수법으로는 신호를 방해하는 '재밍'과 가짜 신호를 송출하는 '스푸핑'이 있으며, 윤 센터장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이러한 교란 사례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AI 에이전트 확산과 국가 차원의 백업 체계 필요성

특히 스스로 판단하고 과업을 수행하는 '에이전트 AI'의 확산은 위협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공격자가 AI를 활용해 취약한 시간 설비를 찾아낼 수 있는 반면, 잘못된 시각 정보를 입력받은 AI는 오류를 인지하지 못한 채 잘못된 명령을 지속적으로 내릴 수 있어 피해가 타 시스템으로 순식간에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윤 센터장은 시간 정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지 않도록 AI의 의사결정을 제한하고, 인간이 직접 검증하고 개입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안전 통제의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간 동기화가 동시에 무너지는 극단적 시나리오를 언급하며, 통신, 데이터센터, 교통, 물류, 국방 분야가 연쇄적으로 오작동하고 복구 시스템마저 마비될 경우 국가 안보 위기로 직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이는 발생 확률이 매우 낮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대비책임을 분명히 했다. 윤 센터장은 폴란드 사례를 들어 위성 교란에 대비한 다층적 시간망 구축이 핵심 안보 현안임을 언급하며, 한국 역시 위성 신호 단절에 대비한 독립 시계 유지 능력과 범정부 차원의 관리 체계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독자적인 지상 시간망 및 광전송 기술 구축 현황

기술적 대응책도 논의되었다. 허명선 그룹장은 자체적으로 생성하고 유지하는 기준시 'K-Time'을 최근 9개월간 수 나노초 오차 범위 내로 유지해 왔다고 밝혔다. 또한 해외 위성 신호에 의존하지 않고도 시간을 안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광섬유망 활용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는 독자 표준시의 부재 문제가 아니라, 핵심 인프라에 중단 없이 시간을 공급할 별도의 경로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한편, 약 5년간 정밀 시간 및 주파수 전송 기술을 연구해 온 연구진은 대전과 서울을 잇는 광기반 전송망 구축을 완료한 상태다. 현재 대전에서 평창을 잇는 구간 연계도 추진 중이며, 장기적으로는 국가연구망을 활용한 전국 단위의 서비스 체계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윤 센터장은 기술적 대응과 더불어 시간 안보를 국가 차원에서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