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 대중화'가 불러온 법률·보안 시장의 폭발적 수요

인공지능(AI) 기술이 해킹의 진입 장벽을 낮추며 공격이 일상화되자, 피해를 입은 기업들이 로펌과 보안업체를 찾아 줄을 서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1일 법조계와 보안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해킹 사고를 겪은 한 스타트업은 개인정보 유출 사실을 인지한 뒤 대형 로펌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상담 문의가 폭주해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해당 로펌에는 사고 수습을 위한 수십 곳의 기업 문의가 동시에 몰린 상태였다.

피해 기업들이 사고 발생 즉시 법률 전문가를 찾는 이유는 엄격한 법적 시한 때문이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정보 유출을 인지한 시점부터 72시간 이내에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나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신고하고 피해자들에게 통지해야 한다. 이 골든타임을 놓칠 경우 가해지는 제재가 막대하기에, 기업들은 서둘러 법적 대응책을 마련하고자 한다.

보안업계로 몰리는 방어 수요와 AI 공격에 대한 공포

보안업계 역시 예방과 대응을 위한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보안업체 스틸리언은 지난달 금융권 해킹 사건 이후 AI 기반의 방어 솔루션과 모의해킹, AI 공격 대응이라는 세 가지 분야에서 수요가 고르게 증가했다고 전했다. 특히 웹 구축에 자주 쓰이는 PHP 언어의 취약점이 공개되자, 일주일간 무료 점검 서비스에만 약 3만 건의 접속이 몰렸다. 황성규 시스코 보안사업 총괄 상무는 기업들의 질문이 'AI 공격을 막는 법'이라는 막연한 수준부터 'AI를 활용한 보안 강화'라는 구체적인 방향까지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급증하는 유출 신고와 로펌의 전담 조직 확대

AI를 활용한 해킹이 확산되면서 실제 정보 유출 규모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접수된 유출 신고 건수는 579건을 기록하며 이미 지난해 전체 신고량인 447건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로펌의 업무량도 폭증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침해 사고 대응 및 준법 자문 건수가 작년보다 2배 이상 늘었으며, 광장 또한 관련 업무가 약 25% 증가했다. 이근우 화우 정보보호센터장(변호사)은 하루에만 5건 이상의 금융권 해킹 이슈를 분석한 적도 있다며, 지난주 문의량이 평소보다 5배 이상 많았다고 밝혔다.

쏟아지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대형 로펌들은 전문 조직을 확충하고 기술 인력을 대거 영입 중이다. 세종과 광장은 약 60명 규모의 전담팀을 구성했으며, 김앤장법률사무소는 지난달 27일 미국 보안기업 팰로앨토네트웍스와 협력 관계를 맺었다. 태평양은 KISA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출신 인력을 보강했고, 화우는 50여 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정보보호센터를 통해 사고를 단계별로 조치한다. 김선희 법무법인 율촌 파트너변호사는 해킹 사고가 시시각각 발생하고 있어 팀 전체가 24시간 365일 상시 근무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