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에서 이용으로, 변화하는 소비 패러다임
과거 냉장고를 구매한다는 행위는 향후 10년에서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사용할 물건을 가정 내에 들여놓는 중대한 결정이었다. 자동차 역시 큰 자금을 투입해 마련한 뒤 고장이 나면 수리하며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더 뛰어난 신제품이 출시되더라도 즉각 교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소유 중심의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제품을 직접 소유하기보다 필요한 기간만큼만 활용하고, 비용을 매달 분납하는 방식이 현대 소비의 새로운 기본값으로 자리 잡고 있다.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기존에 OTT 서비스나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던 구독 경제 모델이 이제는 가전제품과 자동차 영역까지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제품을 일시에 구매하는 대신 일정 기간 이용하며 비용을 나누어 내는 방식이다. 이는 소비자 측면에서 초기 구매 비용의 압박을 덜어주는 동시에 체계적인 관리 서비스를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기업들 또한 이를 새로운 수익 모델로 삼아 사업 영역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는 추세다.
가전 업계의 폭발적 성장과 삼성·전자의 행보
콘텐츠와 온라인 플랫폼에서 시작된 구독 서비스는 가전 업계의 본격적인 가세로 시장 성장세가 더욱 가팔라졌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 9월 말 개최된 ‘삼성 구독 미디어 브리핑’을 통해 주요 가전 구매자 3명 중 1명은 이미 구독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자 분야의 구독 매출 규모 역시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전자의 가전 구독 사업 매출은 2023년 1조 1341억 원에서 지난해 2조 4000억 원 규모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1조 3000억 원을 달성하며 사상 첫 연 매출 3조 원 돌파가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전자는 2030년까지 구독 사업 규모를 2024년 대비 약 3배 수준인 6조 원까지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가전 구독의 핵심적인 매력은 비용 분산과 통합 관리 서비스에 있다. 수백만 원에 달하는 고가 가전의 가격을 월 단위로 나누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계약 조건에 따라 설치부터 수리, 유지 관리까지 원스톱으로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제품 교체 시 기존 제품을 처분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으로 꼽힌다.
자동차 시장의 경직성 깨는 '차량 교체형' 구독 등장
이러한 구독 모델의 파도는 자동차 시장으로도 옮겨가고 있다. 자동차는 주택을 제외하면 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자산 중 하나로, 초기 구매 비용은 물론 감가상각, 세금, 보험료, 정비비 등 소유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막대하다. 이 때문에 할부나 리스, 장기렌터카 같은 금융·대여 상품이 일찍부터 발달해 왔으나, 기존 방식에는 '계약의 경직성'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통상 36개월에서 60개월 단위로 맺어지는 기존 계약들은 만기 시까지 동일한 차량을 이용해야 하는 구조다. 생활 환경의 변화로 차량이 필요해져도 계약을 중도 해지하면 위약금이 발생하거나 타인에게 승계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반면 최근 등장한 자동차 구독 서비스는 계약 기간을 유지하면서도 차량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한다. 카셰어링 기업 쏘카가 이달 초 선보인 ‘쏘픽(SSO PICK)’이 대표적이다. 쏘픽은 12개월에서 60개월 사이의 이용 기간을 선택할 수 있으며, 최소 1개월 이상 이용 시 위약금 없이 다른 차로 갈아탈 수 있다. 신차와 중고차 사이의 교체는 물론 차종과 브랜드, 차량 등급의 상향 또는 하향 변경도 자유롭다.
비대면 계약과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하는 구독 경제
쏘카의 새로운 서비스는 선납금이나 별도의 신용조회 절차가 없으며, 중도 해지 시 발생하는 위약금 부담을 없앴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용 요금은 장기렌터카와 유사한 수준으로 책정되었으며, 특히 테슬라 모델Y의 경우 60개월 이용 시 업계 최저가를 보장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앱을 통한 비대면 계약 시스템을 구축해 대리점 방문 없이도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으며, 계약 후 24시간 이내 차량 탁송이 가능하다. 쏘카 관계자에 따르면 서비스 출시 후 열흘 동안 20대부터 50대까지 폭넓은 연령층에서 계약이 체결되었다.
다만 자동차 구독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은 기존 금융 상품 대비 얼마나 차별화된 편익을 주느냐에 달려 있다. 소비자들은 월 이용료뿐 아니라 총비용, 보험 및 정비 서비스의 범위, 차량 교체 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초기 비용을 낮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가격 경쟁력과 서비스의 편의성, 그리고 실제 이용 수요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자동차 구독 사업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