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부터 증권사까지, 전방위로 번지는 해킹 공포
시중은행과 증권사를 포함한 금융권 전반에 해킹 사고가 급격히 확산하는 가운데, 가상자산 거래소에서는 실제 고객의 자산이 탈취되는 직접적인 금전 피해까지 발생했다. 침해사고가 단순한 개인정보 유출의 단계를 넘어 실질적인 재산 손실로 이어지자, 금융당국의 보안 점검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동시에 금융권의 내부통제 강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30일 금융업계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달 말 은행권에서 처음 포착된 해킹 징후는 이달 중순 저축은행과 캐피탈사를 거쳐 가상자산 업계와 보험, 금융투자업계로까지 빠르게 퍼져나갔다. 지난 28일에는 대신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 그리고 가상자산 거래소인 빗썸에서도 피해가 추가로 확인되면서, 현재까지 침해사고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금융회사는 최소 20곳에 달한다.
특히 가상자산 거래소인 프라뱅에서는 지난 24일 약 1억 원 규모의 자산이 탈취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프라뱅 측은 사고 발생 이틀 뒤인 26일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피해 사실을 알렸으며, 금융감독원 역시 같은 날 프라뱅에 대한 현장 점검을 정식 검사로 전환해 조사에 착수했다. 프라뱅은 핫월렛에서 비정상적인 출금이 감지된 직후 비상대응체계를 가동하고 시스템 전반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현재 해당 거래소는 서비스를 잠정 중단한 상태이며, 탈취된 자산 규모를 정확히 파악해 전액 회사 자산으로 보전하겠다는 계획이다.
빗썸 고객 정보 유출과 민감 데이터 노출 우려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에서도 사내 모바일 그룹웨어 해킹을 통해 임직원과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지난 27일 발생한 이번 해킹으로 인해 고객 6,444명과 임직원 715명을 포함해 총 7,159명의 정보가 유출 대상에 올랐다. 이 중 5,600명의 고객 정보는 암호화되어 외부 열람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나, 실제 개인정보가 노출된 인원은 844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유출된 항목에는 성명과 전화번호는 물론이고 주민등록번호, 운전면허번호, 계좌번호, 신분증 사본 등 매우 민감한 정보들이 포함되어 있어 2차 피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빗썸은 고객 데이터베이스나 거래소 서비스 자체가 직접 침해된 정황은 없다고 설명하며, 향후 2차 피해가 발생할 경우 피해 구제와 보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고객의 디지털 자산을 직접 관리하는 구조적 특성상 보안 사고가 곧바로 재산 피해로 직결될 수 있다. 이에 대해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프라뱅 사례가 금융권 사이버 공격이 정보 탈취를 넘어 실제 자산 탈취로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경고라고 지적하며, 보안을 단순한 정보보호 차원이 아닌 고객 자산을 수호하는 금융 안보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긴급 점검과 보안 체계 재설계 필요성
해킹 사고가 금융권 전 영역으로 확산하자 금융위원회는 가상자산 업권 등 현재 '전자금융거래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분야에 대해서도 은행권 수준의 강력한 보안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사고 발생 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다각적인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으로 해커들의 침투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존 보안 체계의 빈틈이 노출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한은행의 대출정보 시스템, KB국민은행의 직원 업무지원 시스템, 하나은행의 영업지원 시스템에서 정보 유출이 발생했으며, 미래에셋생명은 별도 인증 없이 조회가 가능했던 외부 접점이 공격 대상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 금융당국은 555개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긴급 보안 점검을 실시했으며, 그 결과 130개사에서 관리 미흡 사항이 발견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체크리스트 기반의 자체 점검만으로는 고도화된 AI 공격을 막기 어렵다며, 모의해킹 등 실전형 검증을 통해 실제 방어 능력을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경영진이 보안을 내부통제의 핵심 문제로 인식하고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소비자들에게는 OTP 등 이중 인증을 활용해 2차 피해를 예방할 것을 당부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내달 5일 이억원 금융위원장 주재로 금융협회장 및 5대 시중은행장들이 참석하는 'AI 보안위협 대응 금융권 간담회'를 열 계획이다. 이 자리에서 지난 4일 주문한 보안 점검 이행 상황과 AI 방어 체계 구축 현황을 면밀히 검토하고 업권별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