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공백이 남긴 흔적

지난 2008년, 한 남성은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려다 발길을 돌렸다. 심사를 진행하는 주민센터로부터 부모에게 연락이 갈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기 때문이다. 연로하신 부모님께 자신의 어려운 형편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그는 결국 거리로 나앉아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018년에 이르러서야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수급 신청을 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버렸다. 현재 그는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으나, 오랜 고통 끝에 희귀질환까지 얻은 상태다.

지난달 28일 개최된 제4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 공청회에서 그는 자신의 10년 노숙 경험을 증언하며 질문을 던졌다. 만약 부양의무자 기준이 진작에 사라졌더라면 지금의 병을 피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물음이었다. 수급 신청서 한 장 제출하지 못했던 그의 10년은 행정적인 기록조차 남기지 못했으나, 제도가 만들어낸 빈곤의 무게는 그의 신체에 고스란히 축적되었다.

종합계획에 빠진 완전 폐지 약속

정부는 오는 11월, 향후 3년간의 정책 방향을 설정할 제4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공청회에서 제시된 방안에는 생계급여 선정 기준을 현행 기준 중위소득 32%에서 2030년까지 35%로 상향하고, 자동차 및 주거용 재산에 대한 소득환산 기준을 개선하며 신청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부양의무자 기준의 완전한 폐지는 이번 계획에도 담기지 않았다. 중증장애인 등 특정 대상에 한정된 일부 개선책만이 논의되었을 뿐이다. 또한 이번 공청회는 연구자와 전문가 위주로 운영되어, 실제 수급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낼 기회는 제한적이었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국가가 빈곤층의 생계를 책임지기에 앞서 부모나 자녀 같은 가족의 부양 능력을 먼저 검토하는 제도다. 가족에게 실제 도움을 받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가족의 소득과 재산 규모가 수급 자격의 결정적 잣대가 된다. 그러나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가 어떤 가족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차별받아도 되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남는다.

'단계적 폐지'라는 이름의 지연

정부는 그동안 부양의무자 기준의 단계적 폐지를 약속해 왔으나, 실질적인 조치는 폐지가 아닌 완화 수준에 그쳤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준의 수치가 아니라, 가족의 경제력을 수급 자격의 전제 조건으로 삼는 원칙 그 자체에 있다. 이 원칙이 유지되는 한, 가족의 재산 때문에 탈락하는 빈곤층이 발생하고, 가족에게 알려질 것이 두려워 신청을 포기하는 이들도 계속 생겨난다. 앞서 언급된 사례처럼 신청을 포기한 이들은 탈락 통계에도 잡히지 않아 그 규모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결국 완화 정책은 배제의 범위를 소폭 줄일 뿐, 배제를 유도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단계적 폐지'가 10년째 '단계'에만 머물러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어렵게 만드는 논리로 '국민 정서'가 자주 인용된다. 가족이 존재하는데 왜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논리다. 그러나 낡은 제도가 오히려 사람들의 사회적 상상력을 가로막고 있을 수 있다. 제도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상식을 정립할 수 있다. 가난을 가족이 해결해야 할 사적인 불행이 아닌,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불평등의 문제로 재정의하고 그 원칙을 제도로 확립해야 할 시점이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약속된 과제였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이를 공약했으며, 같은 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1,842일간 광화문역 지하에서 농성해 온 이들을 찾아가 단계적 폐지를 약속했다. 내년이면 이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은 지 10년이 된다. 대통령의 공약과 정부의 약속, 그리고 당사자들의 지속적인 요구가 있었음에도 어떤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한지 의문이다.

이번 달 확정될 제4차 종합계획에는 부양의무자 기준의 완전 폐지를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정부에게는 다음 계획으로 미룰 수 있는 과제일지 모르나, 가난한 이들에게 흘러가는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삶의 연속이다. 더 이상의 지체는 허용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