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퇴직연금의 고질적인 저수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 수탁법인이 적립금을 운용하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이와 함께 퇴직금 체불 사태를 방지하고자 2028년부터는 퇴직급여의 사외적립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29일 당정협의를 통해 발표된 '퇴직연금 기능강화 방안'은 지난 2월 노사정 합의를 구체화한 결과물이다. 정부는 다음 달 관련 법 개정안을 마련해 연내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개편의 핵심인 기금형 퇴직연금은 전문 법인이 적립금을 대신 관리하며 발생하는 손익을 가입자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률을 확보하고 다층적인 노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501조 원을 넘어섰으나, 수익률은 6.47%에 그쳐 국민연금(18.82%), 공무원연금(17.2%), 사학연금(18.9%) 등 주요 연금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세 가지 유형의 수탁법인 모델 도입
기금형 제도는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거쳐 확정기여형(DC) 및 개인형퇴직연금(IRP)에 도입할 수 있으며, 한 사업장에서 계약형과 기금형을 병행하거나 여러 개의 기금형 퇴직연금을 운영하는 것도 가능하다. 정부는 수탁법인 설립 주체에 따라 세 가지 모델을 구상 중이다. 먼저 '금융기관 개방형'은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이 단독 혹은 공동으로 영리형 수탁법인을 세워 여러 사업장의 자금을 운용한다. '연합형'은 전국 단위의 노사단체나 복수의 사용자가 비영리 수탁법인을 설립하는 형태다. 마지막으로 '공공기관 개방형'은 근로복지공단의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인 '푸른씨앗'을 활용하며, 100인 이하 사업장은 내년에, 300인 이하 사업장은 2028년에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다만 국민연금공단의 참여 범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고용노동부 측은 전문가 및 노사 간 이견 조율을 위해 국회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수탁법인을 설립하려면 인가위원회의 심의와 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금융기관 개방형의 경우 최소 자본금 120억 원을 갖춰야 하며, 내부통제를 위한 필수 인력 7명과 자산 운용을 위한 전문 인력 5~8명을 각각 확보해야 한다. 정부는 기금의 무분별한 난립을 막기 위해 예비인가와 본인가의 2단계 심사 과정을 거칠 예정이다. 또한 금융기관 개방형 이사회에는 최소 4명의 독립이사를 두되, 이 중 30% 이상(최소 2명)은 가입자가 추천한 인물로 구성해야 한다. 연합형은 노사 동수 구성을 원칙으로 삼는다.
수급권 보호 강화 및 사외적립 의무화 로드맵
가입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원칙을 법률에 명시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수탁법인에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된다. 적립금의 0.25%는 운영위험준비금으로 적립해 손실 보전에 활용하며, 자산 보관과 성과 평가는 외부에 위탁하도록 의무화했다. 감독은 노동부와 금융당국이 협의회를 운영하되, 제재 권한은 노동부가 갖는다.
퇴직금 체불 방지를 위한 사외적립 의무화는 사업장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시행된다. 2028년 1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2029년에는 10~99인, 2030년에는 1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며, 의무화 시점 이후의 근속 기간부터 적용된다. 지난해 전체 임금 체불액의 41.1%인 8,229억 원이 퇴직금 체불이었다는 점이 이번 조치의 배경이다. 정부는 조기 도입 사업장에 대해 내년 예산안에 재정지원(60억 원) 및 경영자금 융자(62억 원) 항목을 신규로 편성했다.
한편 정부는 한국노동연구원과 협력해 근속 1년 미만 및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의 퇴직급여 실태와 의무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노사관계 제도발전위원회를 통해 지난 6월부터 사회적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번 방안이 노동자의 노후를 지키는 제도적 토대임을 강조하며, 12월 국회 본회의 통과를 위해 입법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