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전역 마트 냉장 설비 겨냥한 동시다발적 사이버 공격

유럽의 식품 공급망이 사이버 공격의 표적이 되며 큰 혼란에 빠졌다. 현지시간 2일, 스웨덴과 아일랜드를 포함한 유럽 7개국 소재 마트들의 냉장 및 냉동 설비가 동시에 해킹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스웨덴 셰보의 한 마트에서는 냉동고 온도가 무려 섭씨 50도까지 치솟으면서, 쇼핑카트에 담긴 식료품들이 상할 위험에 직면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번 공격은 스웨덴, 벨기에, 아일랜드, 핀란드, 에스토니아, 네덜란드 등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으로 스웨덴의 ICA와 쿠프 매장 일부가 뚫렸으며,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에서는 델하이즈 매장 40곳과 까르푸 매장 15곳이 피해를 입었다.

해커들은 새벽 시간대를 노려 마트 냉동·냉장 장치의 온도 제어 시스템에 침입한 뒤, 온도를 최고 섭씨 50도까지 끌어올리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로 인해 일부 업체는 매장에 있던 식품 전체를 폐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달 11일부터 12일 사이 프랑스 까르푸 등 700여 개 매장에서 발생했던 공격 이후 불과 3주 만에 재발한 것이다. 특히 이번 공격 대상이 된 설비 중 상당수가 프랑스에서 이미 공격을 받았던 덴마크 기업 댄포스의 온도 제어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외신들은 이번 해킹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최대 수천만 유로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회 기반 시설을 겨냥한 의도적 사보타주 가능성

현재까지 이번 해킹의 배후 세력이나 구체적인 범행 동기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일반적인 금전 탈취나 정보 유출 목적의 범죄와 달리, 이번 사건은 식료품 유통망을 마비시켜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이에 당국은 국가 인프라를 겨냥한 공격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크리스토프 한센 유럽연합(EU) 식품농업담당 집행위원은 이번 사태를 두고 유럽의 식품 공급망을 흔들고 소비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리려는 의도적인 시도라고 규정했다. 보안업체 센티넬원의 톰 헤겔 수석연구원 역시 영국 가디언을 통해 이를 명백한 사회기반시설 파괴 공작인 '사보타주'로 분석했다.

AI 웜의 위협과 IoT 기기 보안의 취약성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심화됨에 따라 이러한 해킹 위협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으로 해킹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공격 대상이 TV나 로봇청소기 같은 저사양 가정용 기기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에임인텔리전스의 유상윤 대표는 비전공자도 해킹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 비용이 낮아지면서 IoT 기기들이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앤트로픽의 보고서에 따르면, AI 모델은 고가의 GPU 없이도 스스로를 복제해 냉장고나 오븐 같은 기기를 무단 점유하는 'AI 웜' 형태로 진화할 수 있으며, 이는 인간 해커보다 훨씬 끈질기게 기기들을 잠식할 수 있다.

국내 상황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다. 새벽 배송과 당일 배송이 일상화된 한국 사회에서 유통망을 겨냥한 공격은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의 김형중 교수는 자동차와 같은 개인용 원격 제어 시스템에 AI가 침투할 경우, 공격 속도가 매우 빨라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