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와 연필로 마주하는 중간고사

창밖의 나뭇가지가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가운데,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의 박경렬 교수는 ‘과학기술과 미래사회’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중간고사 답안지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이미 몇 학기 전부터 컴퓨터를 배제한 채 종이와 연필만을 이용한 필기시험과 구술시험 방식을 채택해 왔다. 집에서 작성하는 재택(take-home) 시험 방식으로는 학생들의 진정한 사고 과정을 파악하기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이 단 몇 초 만에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식 과잉 시대의 글쓰기 위기

박 교수는 그동안 진행해 온 필기시험을 통해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우선 학생들은 자신이 보유한 지식의 양이나 발표 능력에 비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또한, 일부 학생들의 글씨체는 내용을 해독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난해한 경우가 있었다. 이는 단순히 학생들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라, 과거 공책에 한 글자씩 정성껏 적고 모니터 앞에서 수없이 문장을 수정하며 사유의 과정을 거쳤던 세대의 느린 호흡이 그리워지는 대목이다. 과거의 그 느린 과정은 곧 질문하고 고민하는 여정 그 자체였다. 반면 AI는 이러한 사유의 여백을 지워버린 채 방대한 정보를 순식간에 쏟아낸다.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기술과 경쟁하며 살아가야 할 세대가 읽고 쓰는 행위 자체에 대한 의욕을 상실할까 우려된다.

뇌 연결성 저하를 부르는 인지 부채

이러한 우려는 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지난해 MIT 연구팀이 수행한 뇌파 분석 연구에 따르면, 챗GPT와 같은 거대언어모델을 활용해 글을 작성한 집단은 스스로 사고하며 글을 쓴 집단에 비해 뇌 영역 간의 연결성이 현저히 낮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를 '인지 부채'라는 개념으로 정의했다. 판단의 근거를 외부 기술에 의존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인간의 이해력이 손실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결국 글쓰기란 단순히 생각을 외부로 출력하는 수단이 아니라, 인간이 사고하는 과정 그 자체를 의미한다.

질문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

곧 학생들의 답안지가 도착할 예정이다. 박 교수는 학생들의 고유한 필체 속에 담긴 다채로운 관점들을 마주하며 의견을 나눌 생각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교육자로서 학생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가끔씩 흔들어 주는 바람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 가지를 꺾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 아니라, 뿌리가 더 단단히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잔잔한 바람 말이다. 그 바람의 실체는 바로 질문을 던지고 함께 토론하는 과정이다. 인공지능이 정답을 제시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에게 남겨진 가장 핵심적인 과업은 바로 질문을 던지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