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복한 장수에게는 칼을 거두는 법인가

1996년 12월 16일, 전두환 신군부의 12·12 군사반란 및 5·17 내란 사건에 대한 2심 심리가 진행된 서울고등법원은 기존 1심의 판결을 대폭 수정했다. 사형을 선고받았던 전두환의 형량은 무기징역으로 낮아졌으며, 징역 22년 6개월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형량 역시 징역 17년으로 감경되었다. 당시 재판장은 항장(降將)은 불살(不殺)한다는 격언을 인용하며, 공화국을 위해 형량을 한 단계 낮출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판결문을 남겼다. 이는 이들이 6·29 선언을 통해 사실상 굴복했다는 점을 고려하여 사회 통합을 목적으로 감형을 결정한 것으로 해석되며, 사법적 판단이 순수한 법리적 잣대만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5공화국 정통성을 부정하며 번진 내란의 시점 논쟁

반면 해당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폭동적인 진압 행위가 국민의 저항에 부딪혀 6·29 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수용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지속되었다고 명시했다. 이는 1981년 1월 24일 전국 비상계엄 해제와 함께 내란이 종료되었다고 판단했던 1심의 결론과 달리, 내란의 끝을 1987년 6월 29일로 규정함으로써 5공화국의 정통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태도를 취한 것이다. 이후 1997년 4월 1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두환과 노태우의 2심 형량을 그대로 확정하면서도, 내란 종료 시점에 대해서는 1심의 판단을 수용했다. 이는 5공화국 시절 장·차관을 지낸 인물들이 내란의 핵심 임무에 종사했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군 지휘관들의 무죄 판결과 남겨진 법적 의문

한편, 12·3 비상계엄 선포 직전 '롯데리아 회동'에서 노상원 씨로부터 제2수사단 관련 임무를 부여받은 혐의로 기소된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 등 군 지휘관 8명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구 전 여단장은 노 씨로부터 부정선거 의혹 수사를 위한 제2수사단의 단장직을 맡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그의 수첩에는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듯 "짜증", "WHAT?", "장관 지시, 무슨 말"과 같은 메모가 기록되어 있었다. 내란중요임무종사죄는 법정 최저형이 징역 또는 금고 5년인 중범죄다. 재판부는 이들이 상부의 명령에 대해 일부 태업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점을 고려해 중형 선고가 과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군 지휘관들이 12·3 비상계엄의 위헌성과 위법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논리에 대해 사회적 의구심은 여전하다. 상급심에서는 내란 행위에 대한 엄중한 단죄와 정상참작 사이의 균형이 반드시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