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안개 속의 코끼리'가 던진 전율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안개 속의 코끼리'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 최고의 작품이었다. 영화는 네팔의 한 숲속에서 코끼리가 자주 출몰한다는 불길한 예고와 함께 서막을 연다. 트랜스여성 종교 공동체인 '키나르'의 구성원 압사라가 야간 순찰 도중 실종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압사라의 어머니인 피라티는 딸의 마지막 행적을 쫓으며 실종의 원인이 코끼리인지, 아니면 연인 관계였던 마을 주민의 소행인지를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은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와 차별의 시선을 은연중에 드러내며, 결국 키나르 공동체를 축출하려는 갈등으로 치닫는다. 코끼리의 응징을 암시하는 공포스러운 결말을 마주한 뒤, 나는 한동안 영화관 앞 벤치에서 멍하니 앉아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네팔에서의 기억과 취재의 무게
내가 이 영화를 선택한 배경에는 두 달 전 네팔 대홍수를 취재하기 위해 현지를 방문했던 기억이 자리 잡고 있다. 평소 견문이 좁아 생소했던 네팔은 마을 입구의 원숭이와 길거리의 오토바이, 소와 들개가 어우러진 신비로운 나라였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바쁜 와중에도 가슴에 손을 얹거나 합장하며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주었고, 트레킹 가이드 출신의 코디네이터는 돌발 상황마다 능숙하고 성실하게 업무를 처리해 주었다. 네팔 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 덕분에 영화를 골랐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빚을 진 듯한 마음이 들었다.
취재라는 행위가 피해자에게 준 의미
영화제를 마치고 돌아오는 KTX 안에서 나는 내가 쓴 기사들이 네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는지 자문했다. 카트만두 대학병원 앞에서 실종자를 기다리는 가족들의 사연을 듣기 위해 붙잡았던 일, 더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고자 고인의 성격이나 추억을 캐물었던 일, 그리고 막내의 시신을 확인하러 200km 넘게 달려온 가족들을 밤늦게 만나 실종 경위를 상세히 확인했던 일들이 과연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고민이 깊어졌다.
기후 불평등과 남겨진 의무
최근 네팔 홍수 관련 기사를 다시 점검하며, 당시 만났던 트레킹 가이드에게도 안부를 물었다. 그는 약 5,000명의 실종자가 곧 사망자로 처리될 예정이며, 네팔 중부 고르카 지역에 추가적인 홍수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다행히 그는 홍수 피해 지역에서 떨어진 곳에서 다시 트레킹 업무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다만,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네팔과 같은 나라가 왜 기후위기의 피해를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했다. 짧은 글을 통해서라도 기후위기의 비극이 얼마나 불평등하고 부당하게 발생하는지 알리는 것, 그것이 내가 네팔을 위해 지켜야 할 의무임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