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만에 9000억달러 돌파, 세계 4번째 1조달러 고지 눈앞
대한민국의 연간 수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9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이달 중에는 미국, 중국, 독일의 뒤를 이어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연간 수출 1조달러 시대를 열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10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93.7% 급증한 1152억 8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9월의 1209억 4000만 달러에 이어 월간 기준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의 누적 수출액은 9300억 달러로 집계되며 9000억 달러라는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다. 1995년 1000억 달러를 달성한 이후 31년 만에 거둔 쾌거다. 연간 1조 달러 달성까지 남은 금액은 700억 달러 수준이며, 산업부는 이달 내에 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도체 독주 체제와 중국의 기술 추격이라는 양날의 검
이번 10월의 기록적인 실적은 반도체 품목이 주도했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564억 4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작년 10월과 비교해 259.4%라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이는 지난 9월의 603억 달러에 버금가는 역대 두 번째 기록이다. 하지만 특정 품목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는 여전한 과제로 남았다. 전체 수출액 중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49.0%에 달했으며, 이는 지난 8월(47.5%)과 9월(49.9%)에 이어 계속해서 절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히 창신메모리(CXMT)를 비롯한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기술력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어, 중국산 D램의 경쟁력이 확보될 경우 국내 산업 전반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미 무역흑자 1000억달러 돌파와 트럼프발 통상 압박
미국을 향한 수출 호조 역시 양면성을 띠고 있다. 지난달 대미 수출액은 249억 달러로 지난해 10월보다 185.8% 늘어났다. 인공지능(AI) 관련 수요가 급증하면서 지난달 대미 무역수지는 176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의 누적 대미 무역흑자는 1023억 달러에 달하며, 연간 기준으로 대미 무역흑자가 1000억 달러를 넘어선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이는 종전 최고 기록이었던 2024년의 556억 달러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이러한 대규모 흑자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보복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지난해 4월 한국의 무역 흑자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며 25%의 상호관세를 예고한 바 있다. 당시 한국 정부는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며 관세를 15%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최근 대미 투자 합의 이후에도 트럼프 측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을 언급하며 추가적인 관세 인상을 시사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양준석 가톨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정부가 무역 흑자 규모를 근거로 추가 투자나 관세 인상 등 다양한 요구를 해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그는 한국이 보유한 반도체 생산 능력과 같은 핵심적인 '무기'를 전략적인 협상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