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정 수 넘어선 '업무량' 중심의 새로운 측정 기준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기존에는 서비스 이용자 수에 맞춰 월 구독료를 내는 방식이 주를 이뤘으나, 인공지능(AI)이 실질적인 업무를 수행하게 되면서 사용량과 성과를 기준으로 한 새로운 과금 체계가 등장했다. 글로벌 고객관계관리(CRM) 선두 주자인 세일즈포스는 지난 8월 발표한 2분기(5~7월) 실적을 통해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했다. 세일즈포스에 따르면, AI의 실제 업무 수행량을 나타내는 '에이전틱 워크 유닛(AWUs)' 수치는 무려 32억 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AWUs는 AI 에이전트가 정보 갱신이나 고객 문의 처리와 같은 구체적인 업무를 완수한 횟수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시장을 구독 모델로 개척한 세일즈포스는 AI 시대를 맞아 기존 방식의 한계를 직시했다. 사람이 아닌 AI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비중이 급증하면서, 단순히 직원 계정 수로만 요금을 책정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시장 전체로 확산되는 추세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에이전틱 AI의 보급에 따라 2030년까지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시장 규모가 최대 2,340억 달러까지 성장하며 재편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전체 기업용 SaaS 지출액의 약 20%에 해당하는 규모다.

'사용량 미터기'에서 '결과물 기반 과금'으로의 진화

과거에는 직원 한 명당 얼마의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였으나, 이제는 한 명의 사용자가 여러 AI를 동시에 활용하며 막대한 연산 자원을 소모하게 되자 기존 모델이 위기에 직면했다. 사스 창업자 커뮤니티의 제이슨 렘킨 CEO는 AI 에이전트의 자동화 수준이 높아질수록 기존의 사용자 기반 과금 공식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응해 기업들은 구독료에 사용량을 측정하는 장치를 추가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 6월 출시한 '코파일럿 코워크'를 통해 AI 호출 횟수와 자료 검색, 도구 사용 시간 등을 합산해 크레딧을 차감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세일즈포스 역시 '에이전트포스'의 개별 행동 하나당 0.10달러를 부과하는 식이다.

더 나아가 업무의 결과가 확인된 시점에만 비용을 청구하는 모델도 나타나고 있다. 세일즈포스가 인수한 AI 고객상담 기업 '핀'은 AI가 문의를 성공적으로 해결했을 때만 건당 0.99달러(약 1,300원)를 청구하며, 해결하지 못한 경우에는 비용을 받지 않는다. 오픈AI 또한 대형 고객들을 대상으로 AI가 특정 과업을 완수했을 때만 비용을 지불하는 선택지를 제공하기 시작했다고 디인포메이션은 보도했다. 시어리벤처스의 토마시 퉁구스 창업자는 단순한 토큰이나 추론 비용이 아닌, 실제 수행된 '일' 자체에 가격을 매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과 측정의 모호함과 향후 과제

과금의 기준이 성과로 옮겨가면서 '무엇을 성공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검증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예를 들어 AI가 응답했음에도 고객이 만족하지 못해 대화를 종료했을 때, 이를 성과로 인정할지에 대한 업계 공통 기준이 아직 부재하기 때문이다. 기업마다 세부 기준은 상이하다. 젠데스크는 AI의 대화 내용을 다른 AI가 검증하여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요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핀의 경우 고객의 긍정적 답변이 있거나 추가 요청이 없는 상태를 성과로 본다. 세일즈포스의 '에이전트포스 헬프 에이전트'는 고객과 최소 2회 이상 메시지를 주고받고, 사람 상담원 연결 없이 부정적 피드백 없이 종료되어야 완료된 작업으로 간주한다.

현재 성과 기반 과금 모델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벤처캐피털 하이알파의 분석에 따르면, AI 수익화 모델을 도입한 기업 중 단 5%만이 성과 기반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BCG X 코리아의 장진석 총괄은 이러한 모델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공급자와 기업 간에 성과의 정의를 무엇으로 할지, 그리고 그 성과를 어떤 방식으로 측정하고 검증할지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