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기념관 전시물에 ‘거짓’ 붙인 활동가들, 첫 공판서 무죄 주장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역사를 은폐하고 있다는 이유로 전쟁기념관 전시물에 ‘거짓’이라는 문구를 부착했던 활동가들이 첫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8단독 이세창 부장판사는 2일, 공용물건손상 혐의로 기소된 권현우 한베평화재단 사무총장과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 소속 활동가 4명에 대한 첫 공판을 진행했다.
피고인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 사이, 서울 용산구 소재 전쟁기념관 내 해외파병실에 설치된 채명신 주월한국군사령관의 훈령 팻말 복제본에 포스트잇과 마스킹테이프를 이용해 ‘거짓’이라는 글자를 붙여 전시물을 손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전시물에는 ‘한국군의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역사 왜곡에 맞선 시위인가, 공용물건 손괴인가
활동가들은 해당 전시물이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왜곡하고 숨기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한베평화재단 측은 당시 학살 생존자들이 전시물을 보고 분노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국민신문고를 통해 전시물 수정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했으나 전쟁기념사업회가 이를 수용하지 않자 시위를 전개했다.
이에 대해 전쟁기념사업회는 전시물 복구에 약 100만 원의 비용이 소요되었다며 이들을 공용물건손상 및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이후 활동가들은 공용물건손상 혐의로 약식기소되었으며, 지난 7월 서부지법으로부터 각각 50만 원의 벌금형 약식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활동가들이 이 명령에 불복하며 정식재판을 청구함에 따라 이번 공판이 열리게 되었다.
“관람 방해 없었다”... 변호인, 정당행위 강조
재판 시작 전 서부지법 앞에서는 활동가들의 무죄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피고인 측 변호인인 김남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피고인들이 관람객의 출입을 막거나 관람을 방해한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들이 제거가 용이한 재료를 선택했으며 사전에 부착과 제거를 테스트하는 실험까지 거쳤다는 점을 들어 전시물 손괴의 고의성이 없음을 피력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행위가 공적 문제를 알리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었음을 강조하며 이를 정당행위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형벌을 통해 이러한 목소리를 다스린다면 공론장과 표현의 자유, 나아가 민주주의가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미국 워싱턴 역사박물관이 베트남전 전시관에 피해자 유해를 함께 전시하고 있는 사례를 들며, 전시가 다양한 관점과 논란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날 활동가들의 무죄 주장과 관련하여, 다음 재판에서 전쟁기념관 관계자 등을 증인으로 소환해 심문하는 등 절차를 이어가기로 했다. 다음 공판 기일은 내년 3월 15일 오후 2시,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