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소스 선언 뒤에 숨겨진 중국 AI 기업들의 공통된 움직임
“우리는 반드시 오픈소스로 공개할 것이다. 가장 강력한 성능을 가진 모델조차도 오픈소스로 풀어버리겠다.” 지난 5월 진행된 비공개 투자자 교류회(IR)에서 량원펑 딥시크 창업자가 남긴 이 발언은 글로벌 인공지능(AI) 업계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습니다. 고가의 비용이 발생하는 최상위 프론티어 모델을 무료로 배포하겠다는 선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문샷AI의 창업자 양즈린에 의해서도 확인되었습니다. 그는 지난 3월 열린 중국 최대 규모의 과학기술 포럼인 ‘중관춘 포럼’에서 최첨단 연구 성과를 담은 AI 모델을 기꺼이 공개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습니다.
중국 내 AI 공급망 기업들은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경쟁 관계에 있어야 할 기업들이 어떻게 이토록 일치된 행보를 보이는지, 그리고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이 경영권을 내려놓게 만든 공산당의 기업 지배 구조는 어떤 실체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됩니다. 이번 분석은 미국 국방부가 왜 중국 기업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견제하는지, 그리고 창신메모리(CXMT)가 지속적인 적자 상황에서도 차세대 D램 공정 구축에 성공한 비결 등을 포함하여 중국 AI 공급망 13개 기업을 심층적으로 다룹니다.
국유 자본과 황금주를 통한 정교한 기업 통제 시스템
팩플은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김상배 교수 연구팀과 협력하여 중국 AI 공급망의 핵심 축을 분석했습니다. 조사 대상은 SMIC, YMTC, CXMT와 같은 반도체 제조사를 비롯해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텐센트, 웨이보, 콰이쇼우, 아이치이, 텐센트 등 플랫폼 기업, 그리고 딥시크, 문샷AI, 미니맥스 등 AI 모델 개발사와 유니트리 같은 휴머노이드 기업까지 총 13곳입니다. 연구팀은 기업 소유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중국의 기업 공시 플랫폼인 ‘텐얀차’와 ‘키차차’의 자료를 전수 조사했습니다. 특히 국유 자본의 지분율, 특수관리주(황금주)의 존재, 국유 기금의 전략적 투자 내역 및 이사진의 이력을 면밀히 검토했습니다. 2023년 데이터보안법 개정으로 외부 접근이 어려워진 상황이었으나, 연구팀의 협조를 통해 분석을 완료했습니다.
조사 결과, 중국 정부는 분야별 민간 기업들을 마치 거대한 ‘지주사’처럼 관리하며 강력한 구심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반도체 분야 기업들은 국유 자본이 높은 지분을 점유하고 있었으며, 이사회에 공산당 간부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통제권을 행사했습니다. 실제 CXMT는 국유 기금이 5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YMTC는 96%, SMIC는 23%의 지분율을 보였습니다. 이들 기업의 이사회는 모두 당 출신 인사들이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는 구조였습니다.
플랫폼 기업 6곳의 통제 방식은 더욱 정교했습니다. 이들은 적은 지분으로도 막대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특수관리주(황금주)’ 제도를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이버공간관리국(CAC)과 같은 기관이 각 기업의 지분 1%를 보유한 채 사내 이사 1명을 직접 지명합니다. 이렇게 임명된 이사는 기업이 배포하는 콘텐츠에 대한 심사권을 행사하며 이를 경영 개입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미·중 경쟁 속 중국 정부의 전략적 타협과 한국의 과제
김상배 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중국 정부가 직면한 모순적 상황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기술 혁신을 독려해야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기업을 철저히 통제하여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이 두 가지 상충하는 요구 사이에서 일종의 전략적 타협안을 선택한 셈입니다.
중국 정부가 처음부터 모든 AI 공급망 기업을 통제해 온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기조 변화의 핵심 배경에는 경기 둔화라는 경제적 요인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만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은 불투명하기에, 팩플과 연구팀은 정책 변화의 맥락을 읽기 위해 인민일보의 2000년 1월부터 2026년 9월까지의 기사 약 90만 건을 전수 분석했습니다. 후진타오 전 총서기 시절과 시진핑 총서기 부임 이후의 변화를 추적하며, 딥시크와 문샷AI가 고성능 모델을 무료로 공개하게 된 배경을 규명했습니다.
이번 리포트는 단일대오를 형성한 ‘주식회사 중국’의 실체를 파헤칩니다. 현재 한국 또한 독자적인 파운데이션 AI 모델 개발과 3대 메가 프로젝트 등 정부 주도의 AI 총력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2027년부터 2030년까지가 한국 기업들에 가장 힘겨운 도전의 시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이러한 ‘주식회사 중국’의 물결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