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60여 종이 움직이는 베이징의 스마트 돌봄 센터
중국 베이징 경제기술개발구역(E-town)의 한 조용한 주택가에는 4층 규모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매일 300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는 스마트 노인돌봄센터로, 내부에는 60종 이상의 다양한 로봇이 가동 중이다. 지난 3월 운영을 시작한 이 시설은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 기술을 모든 서비스에 통합했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음식 배달과 조리를 담당하는 로봇부터 체스와 오목을 두는 로봇, 차를 우려내는 로봇, 마사지와 뜸을 뜨는 기계까지 폭넓은 기술을 경험한다. 또한 건강 상태를 살피는 모니터링 장비와 이동을 돕는 보조 장비, 외골격 웨어러블 로봇도 갖춰져 있다. 센터에 배치된 로봇 중 80%는 중국 정부가 비용의 대부분을 지원해 구매하거나 대여한 것이며, 나머지 20%는 제조사들이 제품의 성능 검증과 홍보를 목적으로 무상 제공했다.
식당 이용 방식도 스마트하다. 센터 1층 식당의 주민들은 시스템을 통해 음식을 주문하는데, 안면 인식과 건강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별 맞춤형 메뉴를 제안받는다. 특정 식재료를 피해야 하는 고객에게는 자동으로 주의 사항을 안내하는 식이다. 주문이 완료되면 조리 로봇이 정해진 표준 절차에 따라 음식을 만들고, 배달 로봇이 테이블 사이를 이동하며 서빙을 수행한다.
AI 기반 건강 모니터링과 맞춤형 물리치료
센터의 핵심인 노인 돌봄 기능은 주로 3층에서 이루어진다. 베이징의 야오얀 AI가 개발한 비접촉식 AI 건강 모니터링 장비가 이곳의 중추 역할을 한다. 이 장비는 카메라를 통해 안면과 혀를 스캔하여 수십 가지의 건강 지표를 도출하며, 수면의 질이나 치매 초기 증상, 혈중산소 농도, 빈혈 위험 등을 분석한다. 임상적 진단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으나, 기존 혈액검사보다 간편하면서도 85% 이상의 정확도를 보여 일상적인 건강 점검 도구로서의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물리치료 영역에서는 브이시크(VSEEK)사의 스마트 로봇이 활약한다. 중국 전통의학 데이터를 학습한 이 로봇은 인체의 혈자리를 스스로 찾아내어 맞춤형 치료 계획을 세운다. 로봇 팔은 약 20~30분 동안 정교한 마사지를 수행한다. 사교 공간에서는 체스 두는 로봇이 사람과 대결을 펼치며, 승리 시 기물을 정리하며 축하의 의미로 말을 건네기도 한다. 차를 끓이는 로봇과 함께 고령자들은 로봇의 동작을 따라 하는 태극권 수업에 참여하거나, 인간 강사가 운영하는 공예 및 건강 강연을 듣는다.
실용성 중심의 기술 최적화와 국가적 전략
기술의 발전 과정에서 실용성에 기반한 선별 작업도 진행되었다. 지난 10월, 센터 측은 효용성이 낮다고 판단된 10여 종의 장비를 퇴출했다. 예를 들어 차를 따라주는 기계 팔 로봇은 높은 가격과 긴 준비 시간 때문에 사용을 중단했다. 반면 연속 혈당 측정기는 고령층의 의견을 수렴해 더 가볍고 한 손으로 조작하기 쉬운 모델로 교체되었다. 마사지 로봇 역시 사용자가 음성으로 강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제어 기능을 강화했다. 이렇게 매일 수백 명의 사용자와 로봇이 상호작용하며 쌓이는 데이터는 기업들에 귀중한 자산이 된다.
베이징 경제기술개발구역 내 300개 이상의 로보틱스 기업을 바탕으로 이러한 시설은 점차 확산될 전망이다. 중국 정부는 급격한 인구 변화로 인한 돌봄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 로보틱스, 사물인터넷을 결합한 '스마트 양로' 체제로의 전환을 추진 중이다. 2023년에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생성형 AI를 양로 현장에 도입한다는 지침을 내렸고, 2025년에는 32개의 노인돌봄 로봇 시범 프로젝트를 국가 사업으로 선정했다. 2035년까지 전국적인 기술 기반 양로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 아래, 중국의 행보는 고령화 위기 대응을 위한 거대한 사회적 실험으로 평가받는다.
기술과 인간의 역할 분담이라는 과제
하지만 로봇 기술만으로 고령화 문제를 완벽히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기계가 생체 모니터링이나 물리적 이송 업무를 수행할 수는 있어도, 인간만이 줄 수 있는 정서적 교감과 심리적 안정감까지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결국 기계가 맡을 영역과 인간이 유지해야 할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 설계 역시 현장의 실질적인 필요에 맞춰져야 하며, 때로는 고도의 휴머노이드보다 단순한 보조 기구나 돌봄 노동자의 처우 개선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번 실험의 성패는 로봇의 성능 그 자체보다 돌봄의 윤리적 원칙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