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단에서 내려오는 시민들, 미국의 AI 거부 움직임

지난 5월, 에릭 슈미트 전 구글 CEO가 미국 애리조나대학교 졸업식에서 AI가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언급하자 졸업생들의 야유가 터져 나왔다. 슈미트가 두려움을 이해한다며 상황을 수습하려 했으나, 거센 야유는 잦아들지 않았다. 이는 기술 권력이 약속하는 장밋빛 미래를 더 이상 믿지 않는 미국 청년들의 변화를 상징한다. 시민들은 더 이상 AI의 '제물'이 되기를 거부하며 스스로 제단에서 내려오고 있다.

미국 내 AI에 대한 불안감은 이미 기대치를 압도하고 있다. 퓨리서치센터의 6월 조사 결과, AI 확산에 대해 '기대보다 걱정이 크다'고 응답한 18~29세 청년층 비율은 2021년 31%에서 55%로 급증했다. 반면 기대가 크다는 응답은 11%에 불과했다. 전체 조사에서도 AI가 일자리나 노동 방식에 긍정적일 것이라는 답변은 23%에 그쳐 우려가 지배적이다. 메타의 전 민권 담당 부사장 로이 L. 오스틴 주니어는 젊은 세대가 사회보장과 일자리를 원하며, 기술 권력이 이를 빼앗고 쓰레기 같은 대안을 강요한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조직화되는 저항과 데이터센터 반대 운동

여론은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 27일, 전국의간호사들(NNU)은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등 8개 지역에서 '팔란티어 반대 공동행동(Purge Palantir)'을 전개했다. 이들은 노동자 통제에 쓰이는 팔란티어 AI 시스템의 구매 중단과 정부의 투자 철회를 강력히 요구하며 9월과 이달에도 대규모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환경을 파괴하는 AI 데이터센터에 대한 저항도 거세다. 데이터센터워치의 집계에 따르면, 반대 단체 수는 2025년 말 396개에서 2026년 1분기 800개를 넘어서며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이러한 조직적 저항은 실제 정책 변화를 이끌어냈다. 지난 7월 버지니아주 프린스윌리엄 카운티 주민들은 대형 데이터센터 개발 계획 회의에서 5시간 동안 반대 의견을 피력했고, 결국 당국은 용도지역 변경 승인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일주일 사이 두 건의 대형 데이터센터 개발 계획이 좌절되며, 시민들이 AI의 질주에 제동을 걸 수 있음을 증명했다.

한국의 기술 친화성과 정보의 불투명성

반면 한국의 분위기는 미국과 대조적이다. 지난해 10월 서울 성수동 팔란티어 팝업스토어에는 500m가 넘는 대기 줄이 형성되었고, CEO 얼굴이 담긴 티셔츠가 매진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2026년 입소스 조사에서도 한국은 'AI의 장점이 더 많다'는 응답이 67%로, 미국의 38%보다 월등히 높았다. 최호웅 AI시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한국 사회가 기술의 효용성에 매우 익숙하고 친화적이라고 분석했다.

정부 기조 역시 가속주의에 가깝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미국과 중국의 경쟁 속에서 '속도전'만이 살길이라며 'K-팔란티어' 육성을 강조했다. 법적 규제도 완화 추세다. 올해 1월 시행된 AI 기본법은 기업 부담을 이유로 과태료 부과 등을 유예했으며, 9월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은 AI 개발을 위해 원본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또한 2035년까지 데이터센터를 18.4GW로 확대하는 프로젝트와 규제 특례를 담은 '메가특구법안'도 추진 중이다.

권리 행사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의 시급성

한국에서 저항이 미비한 근본적 이유는 정보의 불투명성에 있다. 최호웅 위원장은 데이터센터의 위치나 에너지 소모량 같은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공론화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피해를 체감하지 못해 스스로 '제물'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는 소수가 기술을 결정하고 대다수는 소외되어 부정적 영향을 감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최근 인천 미추홀구 등에서 데이터센터 반대 집회가 열리는 등 미약한 저항의 신호도 감지되고 있다.

현행법상 AI로 인해 기본권 침해를 입은 시민은 설명 요구권과 결정 거부권을 가진다. 그러나 최 위원장은 권리 구제 절차가 모호하다고 지적하며 제도적 명확성을 요구했다. 오병일 디지털정의네트워크 대표와 마리에체 샤케 전 유럽의회 의원 역시 시민이 기술 결정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민주적 거버넌스와 직접적인 입법 영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기술의 효용성에 매몰되지 말고 주체적인 결정권을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