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와 AI 데이터센터가 만든 실적 격차
전기차 시장의 수요 둔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배터리 업계의 3분기 성적표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의 성패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렸다. 삼성SDI가 ESS와 AI 데이터센터용 배터리 판매 호조로 수익성을 높이며 흑자 폭을 넓힌 것과 달리, SK온은 다시 적자 늪에 빠지며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삼성SDI는 29일 발표를 통해 올해 3분기 매출액 약 4조 7,000억 원, 영업이익 약 4,100억 원을 달성했다고 공표했다. 이는 지난해 동기 대비 흑자로 돌아선 수치로, 무려 12개 분기 만에 거둔 최고 실적이다.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ESS 판매가 수익성을 방어했으며, GM과의 합작법인 단독 인수 과정에서 발생한 일회성 정산금도 실적 개선에 기여했다. 증권가에서는 약 1,500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 이 정산금을 제외하더라도 삼성SDI의 실질 영업이익은 2,500억 원대에 달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SK온의 적자 전환과 삼성SDI의 수익 구조
반면 SK온은 3분기 매출 약 1조 5,300억 원을 기록했으나, 805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로 전환했다. 전년 동기 대비 손실 규모는 다소 줄어들었지만, 국내 배터리 3사 중 유일하게 적자를 기록했다는 점이 뼈아프다. 지난 2분기 고객사 보상금 등 일회성 이익 덕분에 8,000억 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에는 해당 수익이 사라진 데다 전기차 배터리 판매 부진까지 겹치며 미국 생산 보조금을 받고도 적자를 피하지 못했다.
두 기업의 명암을 가른 결정적 요인은 전기차 외 시장에서의 매출 창출 능력이다. 삼성SDI는 ESS뿐만 아니라 AI 데이터센터의 필수 설비인 비상 전원용 배터리 판매를 적극적으로 늘려왔다. 정전 시에도 전력 공급을 유지하는 UPS(무정전전원장치)와 BBU(배터리백업장치)는 전력 중단 시 피해가 막대한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장비다. 삼성SDI는 이번 실적 발표에서도 ESS와 BBU의 판매 확대가 수익성 개선의 핵심 동력이었다고 강조했다.
미래 수요 확보를 위한 양산 전략
SK온은 아직 ESS 사업의 매출이 본격적으로 반영되지 않아 전기차 시장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다. 올해 네오볼타 파워와 9GWh 규모의 ESS용 LFP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제품 공급은 내년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경쟁사들이 ESS를 통해 실적을 끌어올리는 동안, SK온은 수주를 실제 매출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한편, 북미 ESS 생산 능력이 가장 큰 LG에너지솔루션은 3분기 잠정 영업이익 7,560억 원을 기록하며 국내 3사 중 가장 높은 이익을 냈다.
앞으로의 관건은 급증하는 ESS 수요를 얼마나 빠르게 실제 공급과 수익으로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삼성SDI는 이달부터 미국 내에서 ESS용 LFP 배터리셀 양산에 돌입했으며, 내년 상반기에는 ESS용으로 전환한 생산라인 두 곳을 순차적으로 가동할 계획이다. 또한 조한제 삼성SDI 전략마케팅실장은 컨퍼런스콜에서 고객사들의 전고체 배터리 성능 평가가 진행 중이며, 내년 양산을 목표로 제품 사양을 구체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SK온 역시 ESS 매출 기반 확대를 위해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연말부터 ESS용 LFP 배터리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수령액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SK온은 공장 가동률 제고를 위해 기존 전기차 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 중이며, SK텔레콤과 협력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분석하는 등 그룹사 AI 사업과 연계한 새로운 기회 창출에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