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대학 순위 뒤흔든 격차와 고등교육의 의문
최근 발표된 QS '세계대학평가 2027'에 따르면, 한국의 상위권 대학은 서울대(38위), 연세대(50위), 고려대(61위), 카이스트(65위)로 총 4곳이 세계 10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중국 대학은 5곳이 세계 30위권에 진입하며 한국 대학 중에는 단 한 곳도 해당 순위에 들지 못했다. 현재 이재명 정부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핵심 고등교육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과연 서울대급 대학을 양산하는 것이 세계 30위권 진입의 해법이 될지는 의문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인공지능(AI) 시대에 대학이라는 시스템이 생존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SK 그룹 최태원 회장이 대학 졸업장의 무용성을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교육계 지도자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학문의 본질과 AI가 초래한 지적 위기
1810년 베를린 대학의 설립 이후, 근대 대학은 단순한 생계 수단인 '빵을 위한 학문(Brotstudium)'을 넘어선 지성의 요람을 지향해 왔다. 피히테는 대학을 학문적 지성을 활용하는 기술을 배우는 곳으로 보았고, 훔볼트는 아직 미지의 영역인 학문을 탐구하는 장소로 정의했다. 지난 200년간 대학은 인류 진보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제 AI가 인간 학자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지성을 구사하며 대학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가 AI를 통해 단백질 구조를 규명하며 노벨화학상을 받은 사례처럼, AI는 이미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현재 대학이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정답을 알아서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대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AI가 작성한 논문이 쏟아지고, AI가 AI의 논문을 심사하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연구자의 필요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위인지학의 몰락과 주관적 해석의 시대
『논어』의 구절처럼 과거의 배움이 자기 수양을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이었다면, 현대의 배움은 타인의 평가와 보상을 바라는 '위인지학(爲人之學)'으로 변질되었다. 대학은 그동안 전문직 자격을 부여하며 위인지학적 교육에 치중해 왔으나, AI가 전문직 영역에 강력한 도전을 가하면서 그 효용성이 무너지고 있다. 객관적 설명을 수행하던 학자의 역할 또한 AI에 의해 대체되는 중이다. 이제 인문학적 과제는 객관적 서술에서 '나는 어떻게 읽는가'라는 주관적 해석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이는 서술의 관점이 3인칭에서 1인칭으로 바뀌어야 함을 의미한다.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찾는 학문의 길
현재 AI 산업은 거대한 경제적·정치적 격전지다. 삼성전자가 AI 반도체로 막대한 영업이익을 거두는 가운데,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AI의 낙관적 미래를 전망한다. 하지만 앤스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와 일론 머스크, 샘 올트먼 등은 AI 개발 속도 조절을 주장하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패권 경쟁을 위해 AI 우위를 강조하며 속도전을 지지한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대학과 학문의 길은 타인의 평가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위기(爲己)'에 있어야 한다. AI조차 개인의 주관적 해석에 대한 답을 대신 써줄 수 없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학문의 영역이 존재함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