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단절과 남겨진 이의 상실감

최은영의 소설 <밝은 밤>은 세대를 관통하며 떠난 이들을 추억하고 그 기억을 공유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누군가의 생애가 마감된다고 해서 그와 맺어온 관계의 끈까지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남겨진 이들은 기억을 매개로 떠난 이와의 연결고리를 지속한다. 그렇다면 매일 대상자의 식사를 챙기고 신체 청결을 돕는 등 일상을 밀착 수행해 온 돌봄 노동자에게 대상자의 죽음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노인이나 중증 환자를 돌보는 현장에서 사망은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건이다. 하지만 그 곁을 지켜온 노동자가 느끼는 상실감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상자가 숨을 거두는 순간 돌봄 계약은 종료되며, 노동자는 즉시 새로운 대상자를 배정받거나 생계를 위해 다른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본 기사에서는 돌봄 대상자의 죽음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과 기관의 대응 방식을 분석한 두 편의 연구를 소개한다.

'박탈된 애도'와 직업적 갈등 사이의 노동자

2024년 핀들리와 로버트슨(Findlay & Robertson)은 재가 돌봄 노동자가 대상자의 죽음을 개인적·직업적으로 어떻게 경험하는지 규명하기 위해 체계적 문헌고찰과 질적 메타합성을 실시했다. 연구진은 5개의 학술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선별한 8편의 논문을 바탕으로, 총 155명의 돌봄 노동자가 겪은 경험을 종합하여 네 가지 핵심 주제를 도출했다.

첫 번째 주제는 개인적 차원의 슬픔이다. 노동자들은 대상자의 사후에 정서적 고통은 물론 신체적 증상까지 동반된 상실감을 경험했다. 이러한 양상은 대상자와 형성해 온 관계의 깊이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두 번째는 '박탈된 애도' 현상이다. 대상자와의 관계가 단순한 직업적 관계로 치부되면서, 노동자가 느끼는 슬픔의 가치가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거나 감정을 표출할 기회조차 제한되는 사회적·조직적 소외가 나타났다.

세 번째는 정서적 회복과 업무 요구 사이의 충돌이다. 경제적 여건 때문에 슬픔을 추스를 휴식 없이 곧바로 새로운 업무를 시작해야 하거나, 직업적 기대치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돌볼 시간을 갖지 못하는 갈등이 관찰되었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들은 정서적 지지와 실질적 지원을 갈망했으나 조직 차원의 대응이 이를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연구진은 고용기관이 이러한 복합적인 영향을 일관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노동자의 상실 경험이 고용 조건 및 경제 상황과 맞물려 더욱 심화된다고 분석했다.

조직적 지원의 한계와 제도적 과제

이어지는 두 번째 연구에서 추이(Tsui)와 동료들은 미국 뉴욕시의 재가 돌봄기관 8곳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진행해 조직적 요인을 분석했다. 기관들은 휴식 제공이나 정서적 지원, 교육 등 다양한 대응책을 운용하고 있었으나, 대부분은 개별 사례에 따라 임기응변식으로 이루어지는 비공식적 사후 조치에 그쳤다. 관리자들 역시 대상자의 죽음이 노동자에게 고용 불안과 심리적 부담을 준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특히 재가 돌봄에서 대상자의 사망은 곧 노동자의 수입 감소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은 지속 가능한 재정 및 정책 자원의 부족을 이유로 체계적인 지원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연구진은 돌봄 노동자의 임금, 유급휴가, 정서 지원 서비스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재정적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제안한다. 노동자의 애도를 단순한 개인의 감정 관리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쉼과 지원을 보장하는 제도적·조직적 조건의 문제로 재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한국의 요양보호사와 간병 노동자 환경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상자의 존엄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그 마지막을 함께한 노동자가 충분히 회복하고 다음 돌봄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논의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지 되물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