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마을, 텅 빈 농촌의 적막
경북 예천군 보문면 옥천리 마을은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법한 좁은 농로를 따라 적막함이 감돌고 있었다. 지난 15일 오후 방문한 이곳은 빈집마다 '촌집 매매' 안내문이 붙어 있었고, 사람의 손길이 끊긴 마당에는 잡풀만이 무성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약 600명의 주민과 130가구가 북적이며 활기를 띠던 옥천리는, 이제 단 19가구 23명만이 남은 상태다. 그마저도 모두 70~90대의 고령층으로, 이장과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최재수(73) 씨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최 씨는 마을의 빈집들이 점차 논과 밭으로 변해가는 현실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을의 생활 여건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마을 초입의 경북선 철길로 인해 버스는 500m 떨어진 곳에 정차하며, 고령의 주민들은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직접 손수레를 끌고 정류장까지 이동해야 하는 고달픈 일상을 보낸다. 인근 초등학교는 전교생 600명 규모로 2부제 수업을 하던 시절을 지나 폐교된 지 20년이 넘었으며, 주민 안수성(85) 씨는 응급 상황 시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어려워 주민들이 속수무책으로 떠나보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데이터로 드러난 인구 소멸의 경고
국토연구원이 지난 7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 소멸의 위기는 특정 지역을 넘어 전국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2024년 기준 전국 1만 5160개 법정리 중 단 한 명의 주민도 살지 않는 '무거주 마을'은 157곳에 달한다. 인구가 100명 미만인 법정리는 2165곳(14.3%)으로, 2014년의 11.1%보다 3.2%포인트 증가했다. 이번 조사는 국내 최초로 기초지자체보다 세분화된 법정리 단위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인구 변화 추산이 가능한 1만 4957곳의 법정리 중 45.3%인 6779곳이 '위험' 또는 '주의' 단계인 인구과소지역으로 분류됐다. 예천군은 전체 173곳 중 84.9%인 147곳이 이에 해당해 전국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을 보였으며, 충북 단양군(83.5%)과 경북 영양군(79.7%)이 그 뒤를 이었다. 전남 고흥군 영남면은 인구가 1000명 선 붕괴를 앞두고 있으며, 빈집이 가장 많은 두원면 역시 고령화로 인한 자연 감소와 인구 유입 부재로 소멸이 가속화되고 있다.
어촌과 구도심까지 번지는 공동화 현상
어촌 지역의 쇠락도 가파르다. 과거 남해안 어업의 거점이었던 경남 통영시 욕지도는 1960년대 2200가구가 거주할 만큼 번성했으나, 어족 자원 감소로 인해 2003년 2707명이었던 인구가 2024년 8월 기준 1896명으로 줄어들며 23년 사이 인구가 약 30% 감소했다. 대도시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성안동은 신규 택지 개발 정체로 젊은 층이 이탈하고 노후 주택이 늘어나며 고령화가 심화하고 있으며, 상당구 내 법정리의 61.4%가 인구과소지역으로 분류됐다.
전국 빈집 규모 또한 확대되는 추세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빈집은 14만 971가구로 전년 대비 약 5%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전남 광주가 2만 3537가구로 가장 많았고, 전북과 경북이 뒤를 이었다.
공동체 회복을 위한 지역사회의 노력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지자체와 주민들의 자구책도 마련되고 있다. 경남 하동군은 '마을협력가 파견 사업'을 통해 농촌 공동체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전북 진안군 봉곡마을은 귀농·귀촌인이 원주민과 어우러져 20년째 자립형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 전북 김제시는 주민들의 사진과 구술을 통해 마을의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시설 정비를 넘어선 근본적인 대책을 강조한다. 전병운 경북대 교수는 인구 감소 상황에서도 지역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사회적 재생사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보경 국토연구원 센터장 또한 기존의 시·군·구 단위 일률적 지원에서 벗어나, 법정리 단위의 세밀한 맞춤형 관리와 기본적 삶의 질 보장 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