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뒤에 숨은 권력의 본질
지난달 19일 열린 이재명 대통령의 기자간담회는 여타의 행사와는 다른 무게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과잉된 자신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반성이 존재한다”며 개혁에 대한 성찰을 내비쳤는데, 이는 지난 500일간 12·3 내란 청산이라는 역사적 정당성을 독점해 온 민주당 정권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고백이었다. 본래 정치는 가치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과정이며, 민심이라는 경기장에서 끊임없이 경쟁하는 행위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용어는 상대를 타격하는 날카로운 무기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그 이면의 본질은 결국 권력을 향해 있다. 적어도 올바름이라는 이미지를 확보해야만 권력을 쥐기 위한 명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치적 올바름은 종종 권력의 정당성 그 자체로 오인되곤 한다. 여기서 정직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과연 주장하는 바만큼 올바른 정치를 수행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정치적 올바름이 상대를 공격하는 칼날이라면, 정치적 선함은 자기 자신에게도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는 죽비와 같은 태도를 의미한다. 이러한 태도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정치는 공존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실종된 공감과 무너진 신뢰
정치적 올바름이 실천 없이 구호로만 남을 때, 정치의 선함은 위기를 맞이한다. 권력이 가진 명분이 클수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민주당 정권이 그 명분을 온전히 확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불과 5개월 전만 해도 60%에 육박하던 정권 지지율과 야당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았던 국민적 신임은 이제 과거의 일이 되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조사 결과, 한국의 민주주의 만족도가 1년 사이 6점 하락한 50.6점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민주적 가치를 독점하려 했던 정권이 오히려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내란 청산과 검찰개혁, 부동산 보유세 강화, 그리고 농지 전수조사 같은 과제들은 그 자체로 틀린 주장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 내란을 완벽히 정리해야 하며, 검찰개혁의 필요성에도 대다수 국민이 공감한다. 부유층의 세금 정상화나 농지 투기 방지 역시 마땅한 정책적 방향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들은 집행 과정에서 조금씩 왜곡되며 국정 신뢰를 떨어뜨리는 빌미를 제공했다. 내란 청산이라는 구호가 지나치게 길어지면서 청산 대상인 ‘악’의 범위가 과도하게 넓어졌고, 내란특검이 정의로 본 인물을 종합특검이 기소하는 혼란 속에 시민들의 열의도 점차 식어버렸다. 이러한 정치적 오염의 책임은 민주당에 있다.
오만함이 불러온 정책의 왜곡
검찰개혁의 논의 또한 올바름의 가치보다는 ‘과잉’ 논쟁으로 변질되었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 부여 여부를 두고 다투는 사이, 수사 부실을 우려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소외되었다. 개혁의 본질이 시민의 권리 보호인지, 아니면 단순한 검찰 지우기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고, 김지용 초대 중수청장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자리다툼으로 비치기도 했다. 부동산 및 농지 정책의 혼선 역시 1주택자나 고령 농지 소유자들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올바름의 오만’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명분을 앞세우는 만큼 타인의 구체적인 욕망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올바른 명분으로 획득한 권력이 어떻게 그 명분 자체를 훼손하게 되었는가. 그 해답은 선한 태도의 결여에서 찾을 수 있다. 민주당을 향한 ‘내로남불’ 프레임은 그들이 스스로에게도 올바른 잣대를 적용하는지에 대한 대중의 의심과 야유다. 공격하는 자의 올바름은 생략되어 있기에 그 언어가 정당하기는 어렵지만, 이 프레임이 작동한다는 것 자체가 민심이 민주당을 선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증거다. 정치인에게 성인과 같은 도덕성을 요구할 수는 없으나, 공인으로서 선해지려는 ‘태도의 의무’는 존재한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손실을 보는 이들에 대한 설득과 공감, 위로의 부족”에 대한 회한은 결국 내용보다 태도가 문제였음을 시사한다. 말로써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다스릴 수는 없다는 교훈처럼, 이번 성찰이 집권 세력이 말 위에서 내려와 실질적인 정치를 시작하는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