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연속성 확보와 에너지 신사업 재편
SK그룹이 주요 계열사의 수장 대부분을 그대로 유지하는 '안정 중심'의 2027년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이번 인사의 핵심은 중국발 공급 과잉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석유화학 및 에너지 부문의 체질 개선에 있다. 특히 그룹은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경영진을 재편했으며,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출신의 정승일 SK㈜ 미래성장담당 사장을 SK이노베이션의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로 낙점했다.
SK그룹은 지난 30일 오전 임시 수펙스추구협의회를 개최하여 각 계열사 이사회를 거쳐 확정된 인사안을 공유했다. 최태원 회장의 사촌 동생인 최창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장용호 SK㈜ 대표이사를 포함한 핵심 경영진은 유임됐다. 역대급 실적을 기록 중인 SK하이닉스 역시 곽노정 대표이사 사장이 자리를 지키며 '원톱' 체제를 이어간다. 지주사인 SK㈜는 포트폴리오 관리 역량을 갖춘 김선혁 SKC 전략부문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사업 구조 개편의 동력을 높일 방침이다. 이는 검증된 실무형 리더를 배치해 경영의 연속성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전기화' 대비한 정승일 사장 영입과 이노베이션의 변화
이번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SK이노베이션이다. 신임 CEO로 내정된 정승일 사장은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전력공사 사장을 역임한 에너지 및 전력 정책 전문가다. 그는 올해 SK㈜ 미래성장담당 사장과 SK하이닉스 에너지 TF 담당 사장으로 그룹에 합류한 바 있다. 그룹 내부에서는 정 사장의 영입 단계부터 '전기화'를 향한 미래 먹거리 준비가 시작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AI 산업의 병목 현상이 메모리 칩에서 향후 전력 문제로 전이될 것을 우려하며, 국내 반도체 단지 조성이나 해외 데이터센터 건설 등 전력 산업과 직결된 모든 분야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설명했다.
재무와 성장의 이원화 구조…글로벌 대응 강화
SK이노베이션의 실무 운영은 강동수 사장이 책임진다. SK㈜의 운영 전반을 이끌어온 강 사장은 이노베이션 대표이사와 에너지 대표이사를 겸임한다. 정 사장이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면, 이노베이션 전략부문장을 거친 강 사장은 재무 관리와 포트폴리오 조정에 집중하는 구조다. 이는 리밸런싱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사업 재편을 지속하기 위함이다. 이노베이션은 AI 데이터센터 확대로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맞춰 기존 정유·화학 중심에서 전력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한편, 장용호 SK㈜ 대표는 이노베이션 대표직을 내려놓고 지주사 경영에 전념할 예정이다.
글로벌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 개편도 단행됐다. 성장 잠재력이 큰 동남아 지역을 총괄하는 직책을 신설하고, 기존 이노베이션을 함께 이끌던 추형욱 사장을 해당 직책에 배치했다. SK하이닉스는 HBM 등 차세대 AI 메모리 개발을 주도한 안현 개발총괄 사장을 신설 조직인 '미주총괄'의 수장으로 임명했다. 이는 미국 빅테크 고객사 대응과 현지 R&D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하며, 개발총괄 업무는 차선용 미래기술연구원장이 겸임한다.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는 권영수 이노베이션 전략본부장이 사장으로 승진해 계열사 간 시너지와 신사업 발굴을 이끈다. SK그룹은 다음 달 12일부터 사흘간 '최고경영자 세미나'를 열어 내년 전략을 논의하며 기업 가치 제고에 나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