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중심의 인력 재편과 경영 안정화 기조
주요 그룹의 연말 인사 시즌이 다가오면서 재계에서는 경영의 안정성을 지키면서도 꼭 필요한 곳에 변화를 주는 '선택과 집중' 방식이 주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까지 이어졌던 대규모 세대교체와 사업 구조 재편이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반도체처럼 확실한 성과를 내는 사업 부문은 기존 경영진의 리더십을 공고히 하고, 변화가 시급한 분야에는 전문 역량을 갖춘 인물을 배치해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SK그룹의 경우 지난달 30일 진행된 사장단 인사를 통해 이러한 흐름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12명의 사장 및 부회장을 승진시키며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단행했던 지난해와는 결이 다르다. 올해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호황과 함께 기록적인 실적을 달성한 SK하이닉스의 곽노정 CEO와 지주사인 SK㈜의 장용호 CEO를 유임시키며 안정에 무게를 두었다. 반면 사업 재편(리밸런싱)을 진행해 온 SK이노베이션은 새로운 수장으로 정승일 사장을 발탁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차관과 한국전력 사장을 역임한 에너지 전문가인 정 사장을 통해, 기존의 정유·석유화학 및 LNG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전력 중심의 '전기화'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삼성·LG의 안정적 경영 유지와 AI 실행력 강화
삼성전자 역시 이달 중하순으로 예정된 인사에서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적인 운영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107조 4천억 원에 달하는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으며, 특히 반도체 담당인 DS 부문에서만 106조 5천억 원의 이익을 창출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영현 DS부문장과 노태문 DX부문장이 이끄는 핵심 체제는 유지될 전망이다. 다만 전영현 부회장이 겸직 중인 메모리사업부장과 노태문 사장의 모바일경험(MX)사업부장을 분리하여 책임 경영을 강화할지가 주요한 관심사다. 또한 로보틱스 등 미래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인재 발탁과 더불어, 최근 수시 인사를 통해 경영진을 유연하게 교체해 온 기조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LG그룹 또한 지난해 주요 계열사 CEO들을 대거 교체했던 만큼, 올해는 경영 안정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달 중순부터 말 사이에 진행될 이번 인사에서는 단순한 수장 교체보다 AI 중심의 미래 사업 실행력을 높이기 위한 조직 개편과 인재 배치가 핵심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강조한 'AI 미래 승부처에서의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LG전자, LG에너지솔루션, LG CNS, LG유플러스 등 계열사 간 역량을 결집하는 '원 LG' 전략을 뒷받침할 적임자를 얼마나 전진 배치할지가 관건이다.
현대차·한화·HD현대의 미래 전략과 인재 배치
현대차그룹은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 안정과 쇄신 사이의 균형을 찾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첫 외국인 CEO인 호세 무뇨스 사장의 유임 여부와 7번째 인사 시즌을 맞은 기아 송호성 사장의 거취가 주목받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피지컬 AI'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정한 만큼, 로보틱스와 자율주행 분야의 인재 중용이 예상된다. 특히 박민우 사장을 중심으로 한 미래 전략에 힘이 실릴 것이며, 40대 차세대 리더와 R&D 기술 인재를 중용하는 기조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미 인사를 마친 한화와 HD현대에서도 성과와 미래 사업 중심의 공통된 흐름이 확인되었다. 한화는 임원 인사를 예년보다 한 달 앞당기며 성과와 성장 잠재력을 우선시했다. 현장에서 실력을 입증한 인력을 배치해 글로벌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다. HD현대 역시 사장단 인사를 11월에서 10월로 앞당겨 단행했다. 이상균 HD현대중공업 부회장에게 그룹 조선 사업을 맡겨 주력 분야의 경쟁력을 다지는 한편, AI 데이터센터용 전력 인프라와 소형모듈원전(SMR) 등 신사업 추진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