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나온 1심 판결, 합병 목적의 정당성 인정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두고 옛 삼성물산 주주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이 원고 측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소송이 시작된 지 6년 만에 나온 이번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양사의 합병이 오직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그룹 내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합병이 진행된 절차적 측면에서도 법적 결함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재판장 김석범)는 29일 이재용 회장과 삼성물산 이사진, 그리고 삼성물산 법인을 상대로 옛 주주 26명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삼성물산이 추진한 합병이 사업적 차원의 재무구조 개선과 자산가치 증진을 목표로 했다는 점을 명시했다. 따라서 해당 합병의 목적이 오로지 이재용 회장의 지배력 강화에만 국한되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시각이다.
불공정 합병 비율 주장 기각… "전문기관 평가 거친 합법적 절차"
지난 2020년 2월, 삼성물산 주주들은 양사의 합병 과정이 위법했다고 주장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들은 2015년 당시 설정된 0.35 대 1의 합병 비율이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삼성물산의 매출 규모가 제일모직보다 최대 5배가량 컸음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의 주식 가치를 불공정하게 낮게 책정하여 주주들이 손해를 입었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합병 비율 산정 과정이 자본시장법에 따라 외부 전문 평가기관의 객관적인 주식가치 평가를 거쳐 결정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한 시장의 주가가 인위적으로 조작되었거나 법령에서 금지하는 행위가 개입되었다고 볼 만한 구체적인 정황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사진 책임 및 정부 ISDS 패소와의 차이점
삼성물산 이사회의 손해배상 책임에 대해서도 법원은 부정적인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사들이 합병 안건을 형식적으로만 승인했거나, 국민연금공단의 부당한 지시에 따라 찬성표를 던졌다고 판단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판결은 과거 정부가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겪었던 결과와는 대조를 이룬다. 앞서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부당하게 개입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지난달 30일 ISDS 중재판정부는 정부의 개입과 엘리엇이 입은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며 정부 측의 패소를 결정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