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째 이어지는 성적 수치심과 침묵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캐디로 근무해 온 50대 여성 ㄱ씨에게 골프장은 일반적인 일터와는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1990년대 당시 골프장에서는 고객이 골프채를 전달하며 의도적으로 가슴을 건드리거나 엉덩이를 만지는 등의 신체 접촉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만약 이러한 행위에 항의하다가 고객과 마찰을 빚게 되면, 오히려 캐디가 업무 수행 능력이 부족하다는 책임을 떠안아야 했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고통을 호소할 수 없었던 ㄱ씨는 홀로 눈물을 흘리거나 술로 마음을 달래야만 했다.

시간이 흐르며 직접적인 신체 접촉은 다소 줄어들었으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언행은 여전히 일상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골프공을 고정하는 티가 잘 박히지 않을 때 고객들이 "캐디 언니에게 세워달라고 해"라며 성적인 비유를 섞어 웃음을 터뜨리는 일은 열 번 중 아홉 번꼴로 마주하는 상황이다. 3년 전에는 한 고객이 노상방뇨를 한 뒤 손이 더럽다는 이유로 과자를 직접 먹여달라고 요구하는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 ㄱ씨는 참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현장의 분위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10년 차 경력의 30대 캐디 ㄴ씨 역시 과거에는 성희롱성 발언에 대해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느냐, 골프를 하러 오신 것 아니냐"며 당당히 맞섰다. 하지만 아이를 양육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불쾌감을 억누르는 쪽을 택했다. ㄴ씨는 열 번 중 여덟 번은 못 들은 척 넘기거나, 수위가 지나치다고 판단될 때만 웃으며 대응한다. 원활한 경기 운영과 고객 응대가 캐디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ㄴ씨는 사람을 만나는 일을 좋아하며 이 직업으로 아이를 키워온 것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최소한 사람으로서의 대우는 받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통계로 드러난 참혹한 노동 실태와 정신건강 위기

<매일노동뉴스>가 인터뷰한 다수의 캐디 증언을 종합하면, 이들은 고객의 폭언과 성적 언행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구조적 환경에 처해 있다. 지난달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여성노조와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이 공동 주최한 ‘골프장에 갇힌 캐디의 노동과 안전·보건 이야기’ 토론회에서 발표된 조사 결과는 이를 뒷받침한다. 조사 대상인 캐디 643명 중 61.6%가 최근 1년 사이 성적 수치심이나 성희롱을 겪었다고 답했다. 언어폭력 경험률은 53%, 모욕적인 행위를 포함한 괴롭힘 경험률은 37.9%로 나타났다. 특히 가해자로 고객을 지목한 비율은 성희롱 99.5%, 언어폭력 92.3%, 괴롭힘 89.2%에 달해 가해 주체가 명확했다.

감정노동의 강도 또한 매우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근무 시간의 대부분을 고객과 직접 대면하며 보낸다는 응답은 60.1%로, 비교 집단인 6차 근로환경조사(20%)보다 3배나 높았다. 화가 난 고객을 상대한 경험은 22.4%로 비교 집단(14.5%)보다 많았으며, 감정적으로 불편한 상황에 놓인다는 응답도 24.1%로 비교 집단(16%)을 상회했다. 이러한 환경은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응답자의 36.2%가 우울장애 위험군에 속해 있었는데, 이는 질병관리청 조사 결과인 성인 여성(6.5%)보다 약 5.6배, 성인 남성(3.5%)보다 약 10.3배 높은 수치다. 류지아 가톨릭관동대 교수(사회건강연구소장)는 이들이 누적된 스트레스와 구조적 해결 불가능성에서 오는 무력감 및 좌절감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호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현실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도 확인되었다. 노동안전보건의 책임 주체를 묻는 질문에 사업주나 정부, 고객 대신 '본인'을 선택한 인원이 22명 중 19명에 달했다. 류지아 교수는 노동권과 안전보건에 대한 인식 및 사업장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기 힘든 이유에는 수입 구조의 문제도 있다. 캐디는 월급제가 아닌 고객에게 직접 '캐디피'를 받는 구조이며, 고객과 갈등이 생겨 경기 도중 교체될 경우 즉각적인 수입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박선영 한국여성노동자회 정책연구위원은 경기 진행과 안전을 담당하는 캐디가 단순히 고객의 요구를 수행하는 서비스 제공자로만 취급받는 인식을 지적했다.

법적 보호의 공백도 심각하다. 현재 캐디는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윤지영 직장갑질119 대표(변호사)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와 사용자 개념을 재정립하고, 남녀고용평등법의 보호 범위를 확대하여 법적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