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상장 규제에 발목 잡힌 SK스퀘어의 결단
중복상장 규제가 강화되면서 대기업 계열사들의 기업공개(IPO) 행보가 급격히 위축되는 가운데, SK그룹의 핵심 자산이었던 티맵모빌리티가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티맵은 SK스퀘어가 사업 구조를 개편하는 과정에서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전략적 자산이다. 그러나 상장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대기업의 계열사 보유 전략과 투자 판단 자체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3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현재 SK스퀘어는 골드만삭스와 함께 티맵모빌리티의 경영권 매각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SK스퀘어는 현재 티맵모빌리티의 지분 63.23%를 점유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어펄마캐피탈(9.83%), 이스트브릿지파트너스 산하 테라미터홀딩스(9.83%), 그리고 국민은행(6.39%) 등 주요 재무적투자자(FI)들의 지분까지 합쳐 전체의 60~70%를 확보함으로써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이번 거래 규모는 7,000억 원에서 8,000억 원 사이로 추산되며, 연내에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SK스퀘어는 경영권을 골드만삭스 측에 넘기더라도 일부 지분을 유지하며 인공지능(AI) 및 데이터 분야에서의 협력 관계를 지속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티맵모빌리티가 가진 데이터 역량과 모빌리티 플랫폼의 강점을 그룹 내 관련 사업들과 연계하여 활용할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함이다. 사업적 시너지를 고려할 때 여전히 보유 가치가 높은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경영권만큼은 외부로 이전하는 결단을 내린 셈이다.
상장 지연과 FI 회수 압박이 불러온 매각
이 같은 경영권 매각 결정의 이면에는 상장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과 재무적투자자들의 자금 회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티맵모빌리티는 지난 2021년 프리IPO 단계에서 투자를 유치하며 2025년까지 상장을 완료하기로 약속했으나, 수익성 개선이 지연되면서 목표 시점을 2027년으로 연기했다. 특히 상장사인 SK스퀘어의 자회사라는 위치 때문에 상장을 강행할 경우 중복상장 규제에 직면하게 되며, 이는 모회사 주주들의 강력한 반발을 살 위험이 크다. 결국 신규 자금 조달과 기존 FI들의 투자금 회수라는 두 가지 숙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어려워지자 경영권 매각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했다.
최근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8월부터 시행 중인 중복상장 금지 원칙과 가이드라인은 대기업 계열사들의 상장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자회사의 상장을 추진하는 모회사 이사회는 주주 영향 평가를 포함해 주주 보호 방안 마련, 주주와의 소통 및 동의 여부 확인, 이사회 결의 및 공시 등 5가지 핵심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특히 물적분할을 통해 설립된 자회사는 모회사 주주들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성장 자금을 확보하려는 기업 입장에서는 상장의 당위성을 입증하고 주주들을 설득해야 하는 막대한 비용과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
해외 증시 우회로마저 차단된 규제의 파급력
해외 시장을 통한 우회 상장 역시 더 이상 안전한 탈출구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과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 19일과 22일 진행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SK하이닉스의 미국 내 손자회사인 솔리다임의 상장 건에 대해서도 중복상장 규제 대상이라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는 국내 모회사 주주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자회사의 해외 상장 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다음 날인 23일 솔리다임의 프리IPO 및 IPO 검토 중단을 공식 발표했다. 금융당국의 이러한 기조는 대기업 계열사들의 미국 증시 진출 경로를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규제의 여파는 다른 그룹사로도 빠르게 확산되는 양상이다. 두산그룹의 미국 연료전지 자회사인 하이엑시엄은 나스닥 상장을 준비 중이지만, 솔리다임 사태 이후 국내외 투자은행(IB)들이 주관사 참여 여부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상장 절차가 도중에 중단될 수 있다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하이엑시엄은 2023년 FI로부터 2,18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으며 4년 내 IPO를 약속한 상태라, 상장이 늦어질 경우 두산이 FI의 풋옵션 의무를 직접 떠안아야 하는 재무적 위험이 존재한다.
다른 대기업들도 상장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LG전자의 베어로보틱스와 현대차그룹의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미국 상장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었으나 구체적인 일정이 잡히지 않았으며, HD현대로보틱스는 상장 절차를 잠정 중단하고 주관사 인력을 철수시켰다. LS그룹 역시 지난 1월 소액주주들의 반대로 에식스솔루션즈의 상장심사 청구를 철회한 바 있으며, 한화에너지 또한 주관사 선정 이후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결국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 경로가 차단되면서, 대기업들은 자회사에 직접 자금을 투입하거나 외부 투자를 유치하는 등의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모회사의 자금력에도 한계가 있고 상장 불확실성이 지속될수록 FI와의 약정 이행 부담은 커진다. 이에 따라 자회사 지분을 매각해 재무적 부담을 덜어내는 방식이 주요한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티맵모빌리티를 기점으로 상장 난항을 겪는 계열사들의 매물 출회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으며, 사업적 연관성이 있는 경우 경영권은 넘기되 일부 지분을 보유해 협력을 유지하는 모델이 확산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모회사가 지분 전량을 가진 자회사는 상장 지연에 대응할 여유가 있지만, FI와 특정 시점까지 상장하기로 약정한 기업은 지연될수록 압박이 심화된다"며 "IPO를 전제로 하지 않은 신규 투자 유치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 경영권 매각이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