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손상 정밀 제어하는 'CGRID' 기술 개발
질병의 근원인 암과 노화 메커니즘을 규명하기 위해 유전자 가위로 의도적인 DNA 손상을 유도하는 혁신적인 기술이 공개되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생명과학과 연구진은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DNA의 특정 지점에 원하는 형태의 손상을 가할 수 있는 'CGRID' 기술을 개발했다고 29일 발표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인 ‘핵산연구’ 10월 28일 자호에 게재되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인체 세포 하나당 매일 수만 건의 DNA 손상이 발생한다. 우리 몸은 복구 단백질을 통해 이를 치유하지만, 만약 이 과정이 원활하지 않아 손상이 누적되면 결국 노화나 암 같은 중증 질병으로 이어진다. 이에 연구팀은 손상 복구 단백질의 활동 양상을 정밀하게 관찰하고자, 이중나선 구조인 DNA 내의 특정 위치에 다양한 유형의 손상을 삽입할 수 있는 기술을 구축했다. DNA 손상은 염기 하나가 탈락하거나 변형되는 것부터 한 가닥 혹은 두 가닥이 모두 절단되는 형태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기존 한계 극복한 새로운 DNA 교체 방식
기존에는 DNA에 특정 손상을 구현하기 위해 손상 부위가 포함된 전체 DNA를 합성하거나 여러 조각을 이어 붙여야만 했다. 하지만 DNA 길이가 길어질수록 제작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었고, 손상을 삽입할 수 있는 위치도 국한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반면 CGRID 기술은 단일 가닥을 절단하는 두 개의 유전자 가위 효소를 사용하여 특정 구간을 도려낸 뒤, 해당 자리를 손상이 포함된 짧은 합성 DNA 조각으로 교체하는 혁신적인 방식을 채택했다. 이를 통해 긴 DNA 가닥 중 원하는 지점에만 손상을 넣을 수 있어 기존의 제약을 효과적으로 해결했다.
연구팀의 실험 결과, 약 1,000 염기쌍 길이의 DNA에서 90%에 달하는 삽입 효율을 확인했으며, 4만 8,500 염기쌍에 이르는 긴 DNA에서도 정밀한 손상 삽입에 성공했다. 실제로 염기 하나가 빠진 손상을 넣었을 때 복구 단백질인 ‘APE1’이 해당 부위를 찾아가는 과정을 포착했으며, 두 가닥이 끊어진 구조를 모사한 실험에서는 복구 단백질 ‘Ku70/80’이 결합하는 현상도 증명했다.
히스톤 결합 상태에 따른 복구 기전 규명 가능
CGRID 기술은 DNA가 히스톤 단백질에 감겨 있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복구 과정의 차이점까지 분석할 수 있게 한다. 연구팀은 손상된 DNA를 히스톤에 감아, 손상 부위가 외부로 노출되었을 때와 히스톤에 가려졌을 때 복구 단백질의 반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 연구했다. 이 과정에서 손상의 방향과 위치에 따라 APE1의 인식 효율이 변화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이자일 교수는 과거에는 연구자가 의도한 손상을 원하는 위치에 넣는 작업이 비용과 시간 면에서 매우 까다로웠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CGRID 기술을 통해 DNA의 특정 손상이 복구되는 메커니즘을 정밀하게 관찰함으로써, 암과 노화를 유발하는 DNA 손상이 왜 제대로 복구되지 못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찾는 데 기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