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게임 전시회의 무게중심
국내 게임 이용자들의 선호도가 바뀌고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이 재편되면서 국내 게임 전시회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 서브컬처 장르의 강력한 팬덤을 동력 삼아 성장해 온 ‘애니메이션 X 게임 페스티벌(AGF)’의 영향력이 급격히 확대되는 반면, 전통적인 강자인 지스타는 대형 게임사들의 이탈로 인해 경쟁력 유지라는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1일 게임 업계에 따르면, 올해 지스타와 AGF 사이의 관람객 수 격차가 10만 명 미만으로 좁혀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국내를 대표하는 게임 쇼로 군림해 온 지스타와 애니메이션 및 서브컬처를 표방하며 출발한 AGF은 그동안 규모와 위상 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여왔다. 그러나 AGF가 빠른 성장세를 기록하며 두 행사 간의 간극이 점차 줄어드는 양상이다.
수치로 증명된 관람객 및 규모의 역전 현상
실제 통계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스타의 경우 관람객 수가 2023년 19만 7000명에서 2024년 21만 5000명으로 반등했으나, 지난해 20만 2000명으로 다시 감소세를 보였다. 전시 규모 역시 축소되었다. 2024년에는 1,375개 기업이 3,359개 부스를 운영하며 역대 최대치를 찍었지만, 지난해에는 1,273개사와 3,269개 부스로 각각 7.4%와 2.7% 감소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AGF는 매년 누적 관람객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2023년 6만 5,442명이었던 관람객은 2024년 7만 2,081명을 거쳐, 지난해 10만 5,18명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10만 명 선을 돌파했다. 게임 분야 참여 업체 수 또한 2023년 15개사에서 2024년 21개사, 지난해 24개사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 변화와 팬덤 중심의 이동
올해 주요 게임사들의 행보는 두 행사의 온도 차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오는 19일부터 22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지스타에는 대형사 중 크래프톤만이 유일하게 대규모 전시 부스를 운영한다. 반면 12월 4일부터 6일까지 일산 킨텍스에서 개최되는 AGF에는 넥슨, 엔씨, 넷마블 등 이른바 '빅4'를 포함해 스마일게이트, 네오위즈, 시프트업 등이 참가를 확정 지었다. 특히 지난해 지스타의 메인 스폰서였던 엔씨는 올해 AGF의 메인 스폰서로 자리를 옮겼다.
업계는 이러한 변화가 게임사들의 글로벌 시장 공략과 이용자 취향 변화가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한다. 국내 게임사들이 내수 시장을 넘어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신작 공개 무대도 바뀌고 있다. 기존 MMORPG 중심에서 탈피해 글로벌 이용자를 겨냥한 PC·콘솔 및 서브컬처 게임 개발이 늘어나면서 독일 게임스컴이나 일본 도쿄게임쇼 같은 해외 행사의 비중이 커진 것이다. 실제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816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도쿄게임쇼에 대한 관심도(74.5%)가 지스타(68.1%)를 처음으로 앞질렀다.
새로운 마케팅 패러다임과 지스타의 과제
전시회를 활용하는 목적 또한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신작을 최초 공개해 화제성을 모으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면, 최근에는 충성도 높은 이용자를 확보하고 기존 IP를 확장하는 팬덤 마케팅이 핵심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스타가 상징성을 유지해 왔으나 새로운 트렌드와 소비자 변화에 대응하는 데는 아쉬움이 있었다고 지적하며, 최근 기업들이 실제 이용자와 소통하고 IP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행사를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AGF는 타겟 고객층에게 집중할 수 있는 효율적인 무대로 평가받는다.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 서브컬처 콘텐츠를 즐기는 이용자들이 모이기 때문에 코스프레, 한정판 굿즈, 성우 및 개발자 행사 등 다양한 팬 서비스를 제공하기 용이하다. 특히 센서타워에 따르면 국내 애니메이션풍 모바일 게임 매출은 2024년 10월부터 1년간 약 14억 달러를 기록하며 2022년 대비 41% 성장하는 등 시장 성장세도 강력하다.
지스타 역시 변화를 시도 중이다. AI 기업 뤼튼테크놀로지스의 '크랙'을 메인 스폰서로 선정하고, 세가와 CD 프로젝트 레드 등이 참여하는 '지스타 글로벌 게임 쇼케이스'를 신설하며 외연 확장에 나섰다. 다만 주요 기업의 부재 속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운영 방식이나 장소 이전에 대한 쇄신 요구가 거세질 수 있다. 김정태 동양대 교수는 지스타가 글로벌 전시회로 도약하기 위해 신작 공개를 넘어 다양한 콘텐츠가 결합된 팬덤 행사 및 산업 교류의 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