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강조 뒤에 가려진 복지·소상공인 지원 확대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내년도 예산안의 핵심 기조로 '성장'을 36번이나 언급하며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대통령이 구체적인 예산 내용을 설명하며 가장 먼저 제시한 항목들은 복지 혜택과 소상공인 구제책이었다. 신청 절차 없이 지급되는 자동 복지급여를 비롯해, 복지 수급의 기준점이 되는 중위소득의 역대급 인상안, 소상공인의 장기 연체 채무를 조정하는 특별조치, 그리고 25조 6,000억 원 규모의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등이 주요하게 다뤄졌다. 대통령은 내년 예산을 '성장확산 예산'이라 칭하며 소수의 성장을 모두의 성장으로 연결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러한 지출 성격이 직접적인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AI와 반도체 분야에 투입될 21조 3,000억 원이 더해지며 내년 예산은 올해보다 12.8% 증가한 820조 9,00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규모와 증가율 측면에서 모두 역대 최대 수준이다.

반도체 호황이 만든 착시와 다가오는 세수 단절

현재의 대규모 예산 편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인공지능 열풍에 따른 반도체 업황의 호조다. 내국세의 장기적인 흐름을 상회하는 추가 세수가 내년에만 158조 5,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재정 여건은 영구적이지 않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정부의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바탕으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57조 3,000억 원 수준까지 떨어지는 추가 세수는 2028년에 급격히 감소하며, 결국 2029년에는 완전히 단절될 것으로 추정된다.

일시적 세수에 의존한 상시 지출 확대의 위험성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세수를 근거로 상시적인 지출 규모를 키우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다. 복지나 선심성 예산은 한 번 편성되면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재원이 고갈될 경우 결국 국가 채무를 늘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미래대응기금에 대한 우려도 깊다. 예정처는 일시적인 세수 여건과 달리, 사업비의 약 절반 정도는 한 번 정해지면 감축하기 힘든 고정적 지출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경고하며 재정 운용의 주의를 당부했다.

관리재정수지 개선의 이면과 재정 건전성 경고

대통령은 내년도 관리재정수지의 적자 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0.1%를 기록하며 20년 만에 가장 양호한 수준을 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표 개선 역시 반도체 특수라는 일시적 세수 덕분에 가능한 결과다. 추가 세수가 끊기는 시점에 지출 규모를 축소하지 못한다면 재정 적자는 순식간에 팽창할 수 있다. 경제 호황기에 들어온 돈을 바탕으로 불황기까지 감당해야 할 지출을 미리 약속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