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속연수 대신 성과 중심 보상 체계 도입

일본의 주요 대형 은행이 근속 기간에 비례해 퇴직금이 늘어나던 기존의 보상 체계를 폐지한다. 대신 직원이 보유한 역량과 맡은 직책을 핵심 기준으로 삼아 지급액을 결정하기로 했다. 이는 한 직장에서 오래 머물수록 보상이 커지던 일본 특유의 연공서열 문화와 장기근속 중심의 고용 관행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의 보도에 따르면, 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은 오는 2026회계연도 내에 근속 기간에 따라 퇴직금 및 퇴직연금이 증액되던 제도를 없앨 방침이다. 그동안 이 은행은 직원의 능력과 직책, 그리고 근속연수를 모두 통합하여 퇴직금을 산정해 왔으나, 향후에는 근속 기간을 산출 기준에서 완전히 배제할 계획이다.

1만 명 규모 정사원 대상 제도 개편

이번 개편의 적용 대상은 기간제 근로자인 촉탁 사원을 제외한 정사원 약 1만 명에 달한다.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면 관리직과 같은 상위 직책으로 승진하지 못한 채 장기 근무한 직원들의 퇴직금은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반면, 직무 역량과 직책의 비중에 따라 기존보다 20% 이상 높은 퇴직금을 수령하는 직원도 나타날 전망이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법적으로 퇴직금 산정 방식을 일률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대다수 기업은 조직에 대한 소속감과 숙련된 경험을 중시하며 장기근속을 독려하는 고용 문화를 유지해 왔으며, 이에 따라 오래 근무한 이들에게 더 많은 퇴직금을 지급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AI 확산과 고용 패러다임의 변화

하지만 최근 일본 사회에서는 근속 기간 그 자체보다 실제 수행하는 업무 능력과 역할에 기반해 보상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닛케이는 인공지능(AI) 기술이 사무직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흐름 속에서, 단지 오래 근무했다는 이유만으로 보상을 늘려주는 기존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활발히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그간 일본 대기업의 퇴직급여 시스템은 신입사원을 일괄 채용하고 종신고용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설계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감내하는 대신, 한 조직에서 오래 근무하며 경력 후반기에 접어들면 임금과 퇴직급여가 급격히 상승하는 구조였다. 일본 중앙노동위원회의 2025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졸 종합직의 퇴직금은 근속 15년 기준 601만 엔(약 5,800만 원)이었으나 30년 근속 시에는 2,009만 엔(약 1억 6,990만 원)까지 치솟았다. 이는 16년 차 이후부터 매년 평균 90만 엔(약 760만 원)씩 퇴직금이 늘어난 셈이다.

이직 장벽 해소와 퇴직급여 트렌드 변화

이러한 보상 구조는 숙련 인력을 조직에 묶어두는 데는 유용했으나, 동시에 이직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해 왔다. 회사를 옮길 경우 기존 직장에서 쌓아온 근속연수에 따른 혜택을 이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은 근속연수 대신 능력과 직책을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경력직 입사자들이 겪을 수 있는 불이익을 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보상 체계를 개편하려는 움직임은 업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일부 일본 기업들은 퇴직금 제도 자체를 축소하거나, 퇴직 시점에 일시금으로 지급하던 재원을 매월 급여나 상여금 형태로 앞당겨 지급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퇴직금 또는 기업연금 제도를 운영하는 기업의 비율은 2023년 기준 75%로, 이는 5년 전과 비교해 6%포인트 하락한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