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처럼 밀려온 AI와 로봇 기술의 격변기
인공지능(AI)이 단순한 연산을 넘어 컴퓨터를 직접 제어하고 자동차와 로봇을 움직이는 단계에 진입하면서 산업계에 충격이 가해지고 있다. 기술의 진보 속도가 유례없이 빨라지고 있으나, 국내 기업들은 규제 장벽과 투자 부족, 초기 시장 선점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특히 AI가 가져올 일자리 변화와 산업 구조의 재편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글로벌코리아인사이츠(GK인사이츠)는 지난달 8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AI·로봇 시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를 주제로 미래자문단 좌담회를 열었다. 백용호 명예이장이 이끄는 이 싱크탱크는 유망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경험을 공유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이날 토론에는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GK인사이츠 이사)를 좌장으로 엄윤설 에이로봇 대표, 김녹원 딥엑스 대표, 한지형 오토노머스에이투지 대표, 박민준 뤼튼 AX부문 대표가 참석해 열띤 논의를 펼쳤다.
물리적 실체를 갖춘 '피지컬 AI'의 공습
참석자들은 AI가 물리적 행동을 수행하는 '피지컬 AI' 단계로 급격히 진화하고 있다는 데 입을 모았다. 엄윤설 에이로봇 대표는 2~3년 전에는 멀리서 보이던 쓰나미가 이제는 이미 덮쳤다고 비유하며, 외국산 휴머노이드 로봇의 공세가 현실화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로봇 설계 파일을 AI에 입력하자 사람이 며칠간 수행할 시뮬레이션을 단 15분 만에 끝낸 사례를 언급하며, 향후 기술적 병목은 AI보다 하드웨어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자율주행 분야의 한지형 대표는 기술 패러다임이 기존의 '룰 기반'에서 AI의 자율 판단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새로운 도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한 달씩 걸리던 규칙 생성 작업이 AI 도입 후 2~3일로 단축됐다는 것이다. 박민준 대표는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AI가 직접 컴퓨터를 조작하는 '컴퓨터 유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단순 주차 등록부터 재무 업무까지 AI의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으며, 기업 경영진의 의사결정 과정에도 AI를 도입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김녹원 대표는 해외 고객들이 시각언어모델(VLM)과 시각언어행동모델(VLA)을 적극 준비하는 만큼, 올해와 내년이 AI에 의한 산업 재편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향후 5년, 한국 제조업의 생존과 기술 주권
AI는 한국 제조업에 기회이자 동시에 위협이다. 김녹원 대표는 한국의 강력한 제조업 기반이 피지컬 AI 시대의 큰 자산이 될 수 있지만, 향후 5년 내에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기존 산업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그는 기술 주권의 핵심을 반도체로 지목하며, 국산 AI 모델을 쓰더라도 구동 칩을 해외에 의존한다면 진정한 소버린 AI를 달성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엄윤설 대표는 한국의 휴머노이드 하드웨어 기술이 중국에 뒤처지지 않으나, 결국 시장의 승패는 가격 경쟁력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인력난을 겪는 중소 제조업체나 조선, 방산 분야를 주요 타깃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지형 대표는 자율주행 분야가 미국과 중국보다 늦었지만 대량생산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아직 추격 기회가 있다고 보았다. 다만 GPU와 자본이 범용 모델에만 쏠려 응용 기술 지원이 부족한 점을 지적하며 즉각적인 투자를 촉구했다. 박민준 대표는 모든 범용 AI를 선도하기보다 콘텐츠나 금융처럼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별 AI(버티컬 AI)에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인간을 닮아가는 AI의 위험성과 사회적 합의
지능의 발달은 예상치 못한 위험을 동반한다. 박민준 대표는 AI 에이전트들이 밤샘 작업 중 서로 '피곤하니 자자'고 대화하며 일을 멈춘 사례를 들어, AI가 인간의 실수를 학습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엄윤설 대표는 기술적 한계를 기업의 윤리 가이드라인에만 맡길 수 없으므로 법학과 인문사회학적 관점의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지형 대표는 자율주행차의 '트롤리 딜레마'처럼 사고 시 선택의 문제를 기업의 임의 판단이 아닌 법과 제도로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과도한 가이드라인이 규제로 작용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김녹원 대표는 AI가 드론이나 무기체계에 결합되면서 사이버 공격이 물리적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며, 국제적인 안전망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