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단 공개 없는 차기 경영진 압축
주요 금융지주사들이 차기 은행장과 증권, 카드, 보험사 등 계열사 대표를 맡을 후보군을 추려내면서, 이들의 명단 공개 여부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승계 과정의 투명성을 강조하며 절차 개선을 주문하고 있으나, 정작 후보자 명단을 공개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8일 금융지주사 이사회 의장들을 소집하여, 자회사의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하는 승계 절차가 투명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운영할 것을 당부했다. 최근 신한금융과 하나금융 등은 연말 임기가 만료되는 자회사들의 차기 CEO 후보군을 선별했다. 특히 신한금융은 올해부터 은행 임원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은행 이사회의 의견을 반영하는 방식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파벌 형성 및 현업 지장 우려
신한금융은 최종 후보군의 2~3배에 달하는 인원을 1차 후보군으로 압축했으며, 하나금융은 각 회사별로 3명 이내의 인물을 추렸다. 그러나 두 금융사 모두 구체적인 명단은 밝히지 않았다. iM금융 역시 차기 회장을 위한 1차 후보 6명을 선정했으나, 이들의 이름은 여전히 비밀로 유지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후보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선임 과정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비공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내부 인사를 공개할 경우 사내 파벌이나 '줄서기' 문화가 형성될 수 있고, 외부 인사의 경우 현재 재직 중인 직장에서의 입지가 난처해져 경영 활동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논리다. 현재 후보 공개 여부에 관해 명시된 법률이나 업계의 모범 사례, 혹은 각 사의 내규도 존재하지 않는다. 금융당국 관계자 역시 명단을 공개할 경우 적합한 후보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금융사들의 고충이 있음을 언급했다.
외부 검증과 글로벌 사례
해외 금융권에서도 차기 CEO의 1차 또는 2차 후보 명단을 한꺼번에 공개하는 방식은 흔치 않다. JP모건과 같은 일부 사례를 보면, 임원 인사가 곧 경영권 승계의 일환임을 명시하고 후보자들이 각 사업 부문에서 거둔 성과를 바탕으로 경쟁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주주를 포함한 시장 참여자들이 후보자의 경영 역량을 자연스럽게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강경훈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공정한 선임을 위해서는 후보군을 공개하여 외부의 시각과 여론을 통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만약 내정자가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후보 명단을 비공개로 유지한다면, 특정 인물에게 유리한 경쟁 환경이 만들어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