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탈탄소화 흐름 속 한국의 기술적 대응

전 세계적으로 탄소 중립을 향한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미국, 중국, 영국 등 주요 국가들은 기존 선박을 친환경 모델로 전환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한국도 소형모듈원자로(SMR)를 탑재한 선박 개발이라는 과감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삼성중공업과 HD한국조선해양 등 국내 대표 조선사들이 힘을 모으고 있으며, 한국원자력연구원과 같은 전문 연구기관이 합류해 용융염원자로(MSR) 기반의 SMR 선박이 실제로 구현 가능한지를 면밀히 검증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해운 물류 체계의 변화를 넘어 북극항로 개척과 해상 데이터센터 구축이라는 새로운 시장 창출까지 겨냥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과제를 'K-문샷 프로젝트'의 12대 핵심 임무 중 하나로 지정했다. 추진 계획에 따르면 2029년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범용 SMR 가상 원자로 개발을 시작으로, 2032년에는 SMR 선박에 특화된 개발 및 검증 플랫폼을 구축할 예정이다. 최종적으로는 2035년까지 실제 선박 건조에 착수한다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가지고 있다. 이동형 K-문샷 프로젝트 SMR 선박 임무 총괄지휘자(PD)는 2035년이 인허가와 설계, 제도적 정비가 모두 완료되어야 하는 시점임을 강조하며, 단순히 원자로를 제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원자로가 실제 해운 물류망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생태계 조성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MSR 기술의 강점과 선박 적용의 필요성

SMR 선박 개발이 시급한 배경에는 국제적인 환경 규제와 급변하는 시장 점유율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가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10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유럽연합(EU) 역시 규제를 강화함에 따라, 기존 화석연료 기반의 선박 사업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전환점에 직면했다. 특히 올해 세계 선박 수주 점유율에서 중국이 71%를 차지하며 한국(18%)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고부가가치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원자력 추진선과 같은 초고난도 기술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통상 300MW 이하의 출력을 가진 원자로를 일컫는 SMR 중에서도 MSR 방식은 선박 운항에 매우 유리한 특성을 지닌다. 액체 핵연료를 사용하여 증기와 전기를 만들어 프로펠러를 구동하는 이 방식은 한 번 연료를 채우면 매우 오랜 기간 운항이 가능하다. 반면, 물을 냉각재로 쓰는 경수로형 SMR은 고체 핵연료의 특성상 교체 주기가 상대적으로 짧아 해상 운항 환경에서는 제약이 따를 수 있다. MSR은 우라늄 화합물을 염에 녹인 액체 연료를 활용하므로 구조가 단순하고, 대기압에 가까운 저압 상태에서 운전이 가능하다. 이는 두꺼운 용기나 거대한 격납 시설 없이도 높은 수준의 구조적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동형 PD는 기존 원자로가 사고 시 제어봉을 이용해 반응을 멈추는 것과 달리, MSR은 비상 상황 발생 시 연료염이 자동으로 아래쪽 배수탱크로 내려가 핵분열이 중단되는 구조적 안전성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또한 약 25년에서 30년 동안 핵연료 교체 없이 운항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그리스나 덴마크처럼 연료 교체 인프라나 전문 인력이 부족한 국가의 선주들에게도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는 기술적 우위뿐만 아니라 시장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핵심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해상 환경의 극한 조건 극복과 국제 표준 선점

연구진은 실제 컨테이너선의 엔진룸 구조를 직접 분석하며 메인 및 보조 엔진, 배관 시스템 등을 바탕으로 MSR 설계를 진행 중이다. 2032년까지는 영출력 수준의 임계실험과 더불어, 시스템 전체의 약 25% 규모로 사고 조건을 재현하는 종합효과시험을 수행할 계획이다. 또한 부산항에서 미국 롱비치항까지의 운항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하며 기술을 검증한다. 2035년 건조를 목표로 하는 해양용 MSR인 '마리나(MARINA)'는 모듈당 열출력 100MW, 전기출력 약 35~38MW를 목표로 하며, 1만 5000TEU급 컨테이너선에는 2기를 탑재하는 모델이 검토되고 있다.

현재 추진단은 부식 시험 루프와 고온 내식 코팅 배관, 제어드럼 등 핵심 부품의 실물 시험도 병행하고 있다. 특히 해상 환경은 지진이나 충격 같은 정지된 환경과 달리, 파도에 의한 흔들림과 기울기 변화가 지속된다는 점이 가장 큰 기술적 도전 과제다. 이에 따라 자유액면의 출렁임이나 펌프 고장 시에도 전력이 지속되는지 확인하는 유동 시험 등 극한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설계를 반영하고 있다.

기술 개발과 더불어 국제 규제 체계 정비도 병행한다. 현재 IMO의 원자력상선 안전코드는 1981년에 제정되어 경수로 중심의 환경에 머물러 있어, 새로운 MSR 기술을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 기술이 완성된 후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제기구의 기준이 마련되는 시점에 우리 기술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양수산부, 원자력안전위원회 등과 긴밀히 협력할 방침이다. 또한 내년 중 민관 합동 사업화 전담법인 설립을 통해 기술과 자금을 통합 관리하며, 중국의 기술 선점과 미국의 시스템 생태계 선점에 대응하기 위한 '원팀' 전략을 펼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