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와 기술 강조하며 시작한 이재용 회장의 4년
"기술력과 인재야말로 창업 이래 가장 핵심적인 가치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022년 10월, 회장직을 맡으며 임직원들에게 전달했던 메시지다. 취임 4주년을 맞이한 이 회장의 경영 성적표는 명암이 뚜렷하게 교차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반도체 부문은 유례없는 호황을 구가하고 있으나, 완제품 사업의 부진과 파운드리(위탁생산) 부문의 적자 지속, 그리고 노사 갈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난제로 남아 있다.
재계의 전언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이번 취임 4주년을 맞아 별도의 기념행사를 개최하지 않고 조용히 보낼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실적 변동성은 매우 컸다. 2022년 43조 4000억 원이었던 연간 영업이익은 반도체 업황 악화로 인해 2023년 6조 6000억 원까지 급락했으나, 지난해 43조 6000억 원을 기록하며 다시 반등에 성공했다.
AI 반도체 수요 폭증이 이끌어낸 기록적 실적
올해 삼성전자는 메모리 가격 상승과 AI 반도체 수요 확대라는 우호적 환경 속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1분기 57조 2300억 원, 2분기 89조 49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한 데 이어, 3분기 잠정 영업이익은 107조 4000억 원에 달했다. 이는 3분기 단 한 분기 동안 벌어들인 수익이 2022년 전체 연간 영업이익의 두 배를 넘어서는 기록적인 수치다. 삼성전자는 오는 29일, 사업부별 상세 성적과 확정 실적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인수합병(M&A) 행보도 적극적이었다. 독일의 공조업체인 플랙트그룹과 ZF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사업을 인수했으며, 미국 마시모의 오디오 사업 분야로도 투자 범위를 넓혔다. 또한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자회사로 편입하는 등, 반도체에 치우친 수익 구조를 전장과 로봇, 공조 분야로 다각화하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호황 뒤에 숨은 부작용과 노사 갈등의 변수
다만 반도체 호황이 가져온 그늘도 만만치 않다. 메모리 가격 상승은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의 수익성을 높였지만, 스마트폰과 가전, TV 등을 생산하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에는 원가 상승이라는 부담을 안겼다. 한 부문의 호황이 다른 부문의 수익성을 압박하는 구조적 모순이 나타난 것이다. 반도체 내부에서도 메모리와 달리 파운드리 부문은 적자 늪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으며,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에 투입되는 막대한 투자 비용 역시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회장 체제 5년 차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노사 관계 또한 중요한 변수다. 반도체 실적 호조로 인해 성과급 확대에 대한 구성원들의 요구가 거세지는 가운데, 사업부별로 차이 나는 보상 체계를 두고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구성원들에 대한 보상과 미래를 위한 투자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 업계의 관심은 통상 11월 말에 진행되는 연말 정기 사장단 인사에 쏠려 있다. 반도체 부문의 성과가 인사에 어떻게 반영될지, 그리고 부진을 겪은 DX 부문에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이뤄질지가 향후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