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차 간호사가 증명한 인공지능 시대의 돌봄 가치

기술의 진보가 의료 현장을 뒤덮고 있지만, 환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간호 업무만큼은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삼척의료원에서 37년간 근무하며 내년 퇴직을 앞둔 서순미 간호과장은 간호사들이 직업적 자부심을 갖기를 바란다며, 돌봄의 본질에는 반드시 인간의 마음이 더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척의료원 간호사 공채 1기 출신인 그는 수술실과 중환자실 등 현장을 두루 거친 뒤 3년 전부터 간호 인력을 관리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서 과장은 고향과 가족 곁을 지키고 싶어 지역 병원을 선택했다. 대학 시절 3년 내내 장학금을 받을 만큼 적성에 맞았던 간호학을 공부한 그는 자연스럽게 지역 의료의 역사와 함께했다. 1990년대 초반, 삼척의료원이 활발히 운영되던 시절을 그는 생생히 기억한다. 당시에는 월 수술 건수가 200건에 달할 정도로 외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 다양한 진료과목의 의료진이 포진해 있었으며, 교통사고로 인한 간 파열 환자 수술을 보조하던 긴박한 순간들도 있었다. 간호사들의 출퇴근을 돕던 병원 버스가 운행되던 시절의 풍경도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고비마다 마주한 시련과 이를 버티게 한 가족의 힘

그의 37년 경력은 인내의 연속이었다. 임신 중에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수술실 근무를 포기하지 않았고, 환자를 돌보다 결핵에 걸려 1년 넘게 약을 복용하며 고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폐질환의 흔적을 오히려 훈장으로 여겼다. 수많은 고비가 찾아왔음에도 사직을 고민하지 않았던 원동력은 망설임 없이 가족이었다. 근거리에 머물 수 있었던 가족의 존재가 그를 버티게 한 핵심적인 힘이었다.

서 과장은 후배 간호사들에게 업무 시간 8시간을 천국처럼 만들자고 독려하며, 봉사와 수익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직업의 소중함을 전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업무 과중으로 인해 웃음을 잃은 간호사들이 많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3년 이상 근무하는 이들이 드물고 3개월 만에 떠나는 사례도 빈번하다. 그는 자신의 경험담이 자칫 '꼰대'처럼 비칠까 우려하면서도, 인력 부족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루게릭 환자와의 눈맞춤, 기술이 흉내 낼 수 없는 교감

2010년 중환자실 근무 당시, 서 과장은 루게릭병을 앓던 40대 환자를 잊지 못한다. 사슴처럼 큰 눈망울을 가졌던 그 환자는 오직 입을 움직여 혀를 차는 소리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다. 서 과장은 환자의 욕창을 막기 위해 체위를 변경하고, 손을 맞잡으며, 눈을 마주치는 일에 집중했다. 눈을 통해 생의 기쁨과 죽음의 공포를 공유했던 그 순간은, 데이터로 치환될 수 없는 인간적 교감의 정점이었다.

지속 가능한 간호 환경을 위한 '대체간호사 제도' 제언

인공지능 앱이 환자의 요청을 접수하는 시대가 왔지만, 서 과장은 돌봄에 투입되는 '마음'의 가치를 역설한다. 다만, 이러한 자부심은 적절한 업무 환경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가 많아지면 환자와 눈을 맞출 시간이 사라지고, 이는 결국 보호자의 불만과 민원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환자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여유가 필수적이다.

결국 해결책은 인력 확보에 있다. 서 과장은 육아휴직자 등의 공백을 메울 탄력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1년 단위의 단기 계약직은 지원율이 낮아 인력 확보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결원을 즉각적으로 보충할 수 있는 '대체간호사 제도'의 활성화를 강력히 희망했다. 37년의 세월 동안 함께했던 동료들을 떠올리며, 암 투병 중인 동료가 다시 건강하게 복귀하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은 오늘도 현장을 지키는 간호사들을 향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