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뇨제와 소염진통제 병용 시 급성 콩팥 손상 위험 급증
평소 복용 중인 혈압약에 이뇨제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면, 단순한 두통이나 근육통을 해결하기 위해 추가한 소염진통제 한 알이 급성 콩팥 손상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이부프로펜과 같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를 이뇨제와 함께 섭취할 경우 신장 기능에 심각한 과부하가 걸릴 위험이 크다.
일본 교토대병원 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인 ‘Journal of Pharmaceutical Health Care and Sciences’를 통해 약물 조합에 따른 급성 콩팥 손상 위험성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진은 2014년 4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축적된 일본 내 의료 청구 데이터를 바탕으로, 관련 약물을 처방받아 급성 콩팥 손상을 겪은 환자 9만 2880명을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확인된 급성 콩팥 손상 사례는 총 10만 9351건에 달했다. 연구는 특정 약물을 복용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분석 결과, 이뇨제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를 병용했을 때 위험도가 가장 가파르게 상승했다. 여기에 ACE 억제제나 안지오텐신Ⅱ 수용체 차단제(ARB) 계열의 혈압약까지 더해질 경우 발생률비(IRR)는 1.01(95% 신뢰구간 0.86~1.19)로 나타났다. 비록 혈압약 추가에 따른 위험 차이가 통계적 유의성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이는 이뇨제와 소염진통제만 함께 먹더라도 충분히 주의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특히 루프이뇨제 계열을 사용할 때 위험이 가장 높았으며, 이뇨제의 종류가 다양해질수록 위험도 함께 증가했다. 다만 연구진은 진단 코드를 통한 분류 과정에서의 오류 가능성과 탈수나 심부전 악화가 결과에 미쳤을 변수를 연구의 한계로 지적했다.
'트리플 와미' 주의보…세 종류 약물 동시 복용 시 위험 2배
영국 임상약리학 저널(British Journal of Clinical Pharmacology)에 게재된 2025년 메타분석 결과는 이러한 위험성을 더욱 강력하게 경고한다. 의학계에서 ‘트리플 와미(Triple Whammy)’라 불리는 ACE 억제제·ARB, 이뇨제, 소염진통제의 세 가지 조합은 콩팥에 삼중의 타격을 입힌다. 연구진은 2023년 8월까지 발표된 5건의 환자·대조군 연구(총 41만 130명 대상)를 검토했으며, 그중 4건을 통합 분석했다.
이 분석에 따르면 세 계열의 약물을 동시에 복용한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12개월 이내에 급성 콩팥 손상이 발생할 오즈(Odds)가 2.01배(95% 신뢰구간 1.30~3.10)나 높았다. 약물들이 콩팥에 영향을 주는 기전은 각기 다르다. 소염진통제는 콩팥 혈류를 유지하는 물질의 생성을 억제하고, ACE 억제제와 ARB는 콩팥 내 혈액 여과 압력을 낮춘다. 여기에 이뇨제가 소변 배출을 늘려 체내 수분을 줄이면, 콩팥으로 가는 혈액량과 여과 압력이 동시에 떨어지며 급격한 기능 저하를 초래한다. 다만 연구 간 편차(I²=90%)가 커서 근거의 신뢰도는 '낮음'으로 평가되었으며, 사망 위험에 대해서는 데이터 부족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복합제 성분 확인 필수…임의로 약 끊지 말고 전문가 상담해야
국내에서도 로사르탄과 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가 포함된 코자플러스정, 텔미사르탄과 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가 결합된 텔카디플러스정 같은 복합 혈압약이 널리 쓰이고 있다. 이러한 복합제를 복용하는 환자가 별도의 이부프로펜 계열 진통제를 추가하면, 알약 개수와 상관없이 '트리플 와미' 상태에 빠지게 된다. 텔미사르탄·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 복합제의 허가사항 역시 고령자나 신기능 저하 환자가 소염진통제를 병용할 경우 급성 신부전 등 신기능 악화 위험이 있음을 명시하며, 의료진의 관찰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설사, 구토, 고열 등으로 인한 탈수 상태가 겹치면 콩팥 혈류량이 줄어 위험은 배가된다. 따라서 진통제가 필요할 때는 반드시 의료진과 상의해야 하며, 혈압약이나 이뇨제를 스스로 중단해서도 안 된다. 또한 종합감기약에 포함된 소염진통제 성분을 중복으로 섭취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미국신장재단(NKF)은 추정사구체여과율(eGFR)이 60mL/min/1.73㎡ 미만인 만성 콩팥병 환자에게 소염진통제 사용을 피하라고 권고했다.
만약 진통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면 콩팥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아세트아미노펜을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다. 다만 간질환이 있거나 다른 약물과 성분이 겹칠 경우 과량 복용을 경계해야 한다. 콩팥 기능 저하는 초기 증상이 없을 수 있으므로 소변량 감소, 부종, 호흡곤란이 나타나면 즉시 진료를 받아야 하며, 혈액검사와 소변검사를 통한 정기적인 확인이 권장된다. 약을 처방받을 때 약사에게 현재 복용 중인 약물 목록을 보여주고 성분 간 충돌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예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