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거부하는 용기, 김아영의 예술적 성취
제38회 이중섭 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아영(47) 작가는 매번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해 온 예술가다. 박가희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는 축사를 통해 김 작가가 기존의 형식을 답습하는 안전한 길 대신, 낯선 분야를 탐구하고 타인과 협업하며 새로운 방법론을 찾는 '용기'를 발휘해 왔음을 강조했다. 박 큐레이터는 2014년 '오작동 라이브러리'에서 김 작가와 처음 인연을 맺은 이후 그의 작업을 지켜봐 왔다고 밝혔다.
지난 29일 오후 5시 30분, 서울 광화문의 아트조선스페이스(ACS)에서는 이중섭 화백의 예술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정된 제38회 이중섭 미술상 시상식이 개최됐다. 이번 수상자인 김아영 작가는 기술적 변화와 이주, 노동의 문제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파급력을 영상과 설치 미술의 형태로 구현해 왔다. 특히 인공지능(AI)과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 가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독특한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대의 불안을 담아내는 디지털 언어
김 작가의 작업 세계는 초기 석유와 근대화의 역사를 탐구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중동 파견 근로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제페트, 그 공중 정원의 고래 기름을 드립니다, 쉘' 연작은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이름을 올리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22년 발표한 '딜리버리 댄서의 구'는 디지털 사회의 속도와 효율성 속에서 살아가는 배달 노동자의 불안을 묘사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LG 구겐하임 어워드, 샤넬 넥스트 프라이즈, ACC 미래상 등을 거머쥐었으며,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영국 테이트,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등 유수의 기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심사위원단은 이중섭 화백과 김아영 작가가 노동과 생존, 사회적 소외 계층의 불안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깊은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중섭이 담뱃갑 은지를 활용해 독창적 화법을 구사했듯, 김 작가 역시 디지털 기술을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다. 심사위원장인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은 '딜리버리 댄서의 구'를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재배치되는 인간의 자화상이라 정의하며, 이중섭의 예술을 다음 세대의 예술과 연결하는 계기로 이번 수상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세상의 변화를 읽는 리트머스 시험지
수상 소감에서 김아영 작가는 예술이 자신에게 유일한 길임을 고백했다. 그는 세상이 정한 기준에 맞추기보다 2022년부터 스스로에게 집중하며 외부의 시선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고 전했다.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뒤 사회적 목소리를 내기 위해 사진과 현대미술을 공부한 그는, 앞으로도 세상의 온도를 민감하게 측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나 온도계 같은 존재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김 작가에게 이번 수상은 인생의 중요한 방점을 찍는 순간으로 다가왔다.
이날 행사에는 김선정 예술감독을 비롯해 신정훈 서울대 교수, 김인혜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등 심사위원들과 정종미, 홍승혜, 정경연, 배병우, 정복수, 곽남신 등 역대 수상자들이 대거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또한 박명자 현대화랑 회장, 도형태 갤러리현대 부회장, 김종규 박물관협회 명예회장, 신양섭 작가, 이중섭 유족인 이지연·이지향 씨, 홍준호 조선일보 발행인, 변용식 방일영문화재단 이사장 등이 함께했다. 수상 기념 '아티스트 토크'는 오는 11월 5일 같은 장소에서 '머신 비전 시대의 예술'이라는 주제로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