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무장한 러시아의 거대 기만전
러시아가 인공지능(AI) 기술을 전면에 내세워 서방 세계의 결속력을 약화시키려는 대규모 디스인포메이션(허위정보) 공작을 펼치고 있다. 영국 앤디 버넘 총리는 지난 9월 22일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크렘린궁이 정보 조작을 위해 매년 약 13억 파운드(한화 약 2조 4,0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버넘 총리는 10월 11일, 러시아가 과거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과정에도 개입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하며, 사이버 안보 위협에 맞서기 위한 '국가정보방어센터(NIDC)'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가짜뉴스가 단순한 허위 사실 유포를 넘어 민주주의 가치와 국익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심각한 안보 위협임을 시사한다.
프랑스 방첩기관 비지눔의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군 총참모부 산하 정찰총국(GRU)은 '프라우다 네트워크'라는 이름의 가짜뉴스 사이트 집단을 운영 중이다. 이들은 대형언어모델(LLM)과 자동 기계번역 기술을 결합해 전 세계 50개 이상의 언어로 친러시아 성향의 조작된 정보를 생성하고 있다. 이 네트워크는 하루 평균 1만 개, 연간으로는 360만 개가 넘는 가짜뉴스를 유포하며, SNS와 유튜브, 틱톡 등 다양한 플랫폼의 알고리즘을 타고 전 세계 이용자들에게 침투해 인지적 조작을 시도하고 있다.
유럽을 흔드는 친러 세력의 확산
이러한 정보 공작의 영향력은 실제 정치 지형의 변화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9월 8일 독일 작센안할트주 지방선거에서 친러 성향의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승리했으며, 10월 6일에는 주의회 의장직까지 배출하며 독일 정계의 오랜 전통인 '방화벽(Brandmauer)' 원칙을 무너뜨렸다. 이에 따라 서방 정보당국은 독일과의 정보 공유를 제한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독일 주헌법보호청(LfV)을 통해 서방의 핵심 기밀이 적대국으로 유출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 연방정보국(BND)의 전 국장 아우구스트 하닝과 그의 비서실장이 기밀 유출 혐의로 10월 초 체포된 사건은 정보 보안에 대한 경각심을 더욱 높이고 있다.
한반도에 침투하는 러시아 프로파간다
최в근 한국 내 온라인 공간에서도 러시아의 영향력 공작이 의심되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남북 대화를 중재할 수 있다'거나 '젤렌스키의 항복 거부가 전쟁의 희생을 키우고 있다'는 식의 논리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병력과 물자를 지원받아 전쟁을 지속하는 러시아가 중재자 역할을 한다는 주장은 논리적 비약이 심하며, 젤렌스키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은 국가 수호의 관점에서 성립될 수 없는 러시아 측 프로파간다의 전형적인 형태다.
러시아의 이러한 '스텔스'식 공작은 한국을 서방 동맹 체제에서 이탈시키려는 전략적 의도를 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국가 안보 차원에서 방첩 당국의 철저한 색출 작업과 함께, AI 기반의 디스인포메이션에 대응할 수 있는 고도의 정보기술력을 확보해야 한다. 디지털 보안 역량을 강화하고 다차원적인 사이버 안보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