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련함으로 뚫어낸 승부의 문
지난 30일 광주에서 치러진 플레이오프 4차전 6회초 상황이었다. KIA의 좌완 투수 곽도규가 마운드에 올라 선두타자 디아즈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곧바로 좌타자 최형우를 상대했다. 곽도규가 던진 초구는 시속 122㎞의 커브였으며, 좌타자의 몸쪽 낮은 코스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최형우는 마치 구종을 이미 읽고 있었다는 듯 완벽한 타이밍과 균형으로 방망이를 휘둘렀고, 타구는 우월 솔로 홈런이 되어 담장을 넘어갔다. 이 한 방으로 삼성은 2-1의 리드를 다시 가져왔다.
이러한 승부는 마치 '묵찌빠' 게임을 연상시킨다. 상대방이 내놓을 패를 예측해 승률을 높이는 수싸움에서 최형우는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지난 1일 대구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도 그의 노련함은 빛났다. 2사 1, 2루 상황에서 볼카운트 3-2를 맞이한 최형우는 KIA 선발 올러의 슬라이더를 공략했다. 올러가 150㎞대의 빠른 직구를 5구 연속으로 던진 뒤 던진 변화구였기에 타이밍을 뺏길 수도 있었으나, 최형우는 끝까지 배트 헤드를 유지하며 중전 적시타를 만들어냈다. 하주석 유격수의 글러브를 스치듯 지나간 이 안타는 삼성의 승리를 암시하는 결정적 장면이었다.
나이를 이겨낸 시야와 신체 능력
1983년생인 최형우는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매 경기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며 베테랑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그는 정규시즌 당시 인터뷰를 통해 나이가 드는 것이 단순히 퇴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모든 것이 예전 같을 수는 없지만, 오히려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많아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상대 배터리가 어떤 전략으로 승부해 올지 예측하는 '수싸움' 측면에서 한창때와는 다른 차원의 시야가 확보되었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선수가 지혜를 얻고 시야가 넓어지는 시점에는 신체 능력이 저하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최형우는 세월에 따른 신체적 손실을 최소화하면서도, 확장된 시야를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힘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복싱 전설 조지 포먼과 닮은꼴
최형우의 행보는 복싱계의 전설 조지 포먼을 떠올리게 한다. 포먼은 1974년 무하마드 알리에게 패하며 은퇴했으나, 목회자 생활을 거쳐 1987년 복귀했다. 이후 1994년 만 45세 10개월의 나이로 헤비급 세계 통합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그는 당시 40대 복서의 무기는 힘이 아닌 경험과 마음가짐이며, 젊은 선수들이 힘으로 싸울 때 노련한 선수는 지혜로 싸운다고 역설했다.
이 가을, 최형우 역시 포먼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그는 KIA와의 플레이오프에서 13타수 5안타, 타율 0.385, 2홈런, 4타점, OPS 1.275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기록하며 삼성 라이온즈를 한국시리즈로 견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