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 한계를 극복한 고효율 생태계의 탄생

아시아 최대 규모의 데이터센터 박람회인 '데이터 센터 월드 아시아(DCWA)'가 지난 9월 29일부터 30일까지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엑스포 컨벤션 센터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행사에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통신사, 장비 제조사 및 투자자 등 약 3만 8000여 명의 업계 관계자들이 몰리며 인공지능(AI) 인프라 시장의 뜨거운 열기를 증명했다. 싱가포르는 좁은 영토와 만성적인 전력 및 용수 부족이라는 지리적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규모 확장이 아닌 에너지와 컴퓨팅 효율을 동시에 잡는 고부가가치 전략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AI 데이터센터 허브로 급부상했다.

싱가포르 디지털개발정보부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이 지역에는 70개가 넘는 데이터센터가 운영 중이며, 총 용량은 1.4GW(기가와트)를 상회한다. 서울과 비슷한 면적에 이 정도 규모의 시설이 밀집한 것이다. 싱가포르는 해저케이블 통신망이 잘 갖춰져 있고 자연재해 위험이 낮다는 강점을 활용해 데이터센터 거점으로 성장해왔으나, 수요 폭증에 따른 자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9년 신규 증설을 일시 중단하는 '모라토리엄'을 시행하기도 했다. 이후 2022년 사업자 재선정 과정에서 정부는 에너지 효율과 경제적 기여도를 엄격히 평가하는 '데이터센터 구축 사업자 공모제(DC-CFA)'를 도입해 검증된 고효율 사업자에게만 자원을 배분하는 선별적 정책을 펼쳤다.

열대 기후를 이겨내는 기술 혁신과 클러스터 형성

싱가포르의 환경적 제약은 냉각 기술의 혁신을 강제했다. 연중 30℃ 이상의 기온과 80%에 달하는 높은 습도로 인해 외부 공기를 활용한 '프리쿨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냉각에만 전체 전력의 약 40%가 소모되는 극한 환경이다. 이에 싱가포르 정부는 2023년 운영 온도를 26℃ 이상으로 유지해 에너지를 아끼는 '열대 기후형 데이터센터 표준'을 마련했다. 또한 싱가포르국립대(NUS) 및 난양공과대(NTU)와 협력하여 액체냉각 등 차세대 기술 연구를 적극 지원하며 에너지 효율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적 고도화는 국경을 넘어 말레이시아 조호르 지역까지 확산되며 '초국경 데이터센터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올해 7월 글로벌 인프라 기업인 버티브가 조호르에 제조공장을 가동했고, 델타 일렉트로닉스 역시 조호르바루에 사무소를 열며 제조 및 공급 기반을 이 지역으로 넓히고 있다. 맥킨지앤드컴퍼니의 로레인 살라자르 수석 전문위원은 인터뷰를 통해 싱가포르가 지리적 제약을 역전시켜 아태 지역의 핵심 AI 허브로 도약했다고 평가하며, 산업의 경쟁 기준이 설비 용량에서 '단위 전력당 연산 성능(컴퓨팅 효율)'으로 이동했다고 분석했다.

AI 추론 수요 폭증과 미래 데이터센터의 생존 전략

맥킨지의 분석에 따르면 글로벌 데이터센터 수요는 2024년 90GW에서 2030년 278GW로 5년 만에 3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며, 관련 투자액은 7조 달러 규모에 달한다. 특히 성장의 핵심 동력은 'AI 추론'이다. 전체 수요 중 추론 비중은 올해 29%에서 2030년 42%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이며, 추론 수요는 전체 시장 성장폭보다 훨씬 가파른 19배의 폭증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실시간 응답이 필요한 추론은 학습보다 누적 전력 소비량이 4~9배가량 많아 이용자와 가까운 도심 인프라의 중요성을 높이는 동시에, 전력망 확충의 어려움이라는 과제를 던지고 있다.

결국 송전망 확충이 어려운 상황에서 데이터센터의 생존은 인프라와 IT 장비를 아우르는 전방위적 효율 극대화에 달려 있다. 살라자르 전문위원은 에너지 효율을 뜻하는 PUE를 넘어, 랙 내부의 반도체와 메모리, AI 알고리즘까지 포함하는 '컴퓨팅 효율'의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및 컴퓨팅 효율을 높이는 것은 단순한 규제 준수를 넘어 천문학적인 전력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사업자의 생존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경제적 유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