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화면을 응시하며 한국의 산업보건서비스 재설계라는 교수님의 과제를 마주했다. 스스로를 교수가 아니라고 투덜대면서도 제출 기한이 다가오자 고민은 깊어졌다. 이번 〈무사안일〉 쉰여섯 번째 이야기는 답을 찾으려 할수록 질문만 늘어가는 과제의 과정에 관한 기록이다.

권한 없는 개선의 한계

제도 재설계를 위한 위원회 위원이라는 가정하에 소규모 사업장을 주제로 선정했다. 일환경건강센터에서 자주 접하는 현장이기에 익숙한 사례가 많을 것으로 기대했다. '산업안전'에 비해 생소한 '산업보건'은 기계 소음으로부터 청력을 보호하거나 유해 화학물질 세척제로 인한 신체 손상을 막는 일이다. 직업병은 유해요인 노출 후 상당한 시간이 흘러 나타나기에 작업환경 측정과 노동자 건강 상태를 병행 검토하며 위험을 줄이는 전문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작은 사업장은 전담 인력도, 외부 서비스를 이용할 재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단순하게 정부 지원 확대와 전문가 파견을 대안으로 떠올렸으나, 최근 완성차업체 사내하청 노동자와의 인터뷰가 발목을 잡았다. 원청이 시설물의 소유와 관리 주체이다 보니 내부에서 개선할 수 있는 범위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말이었다. 위험을 발견하는 것은 전문가의 몫이지만, 실제 조치를 취하는 단계에서 권한의 문제가 발생한다.

환기설비 개선이 필요하다는 권고가 내려져도, 해당 설비를 관리하는 원청의 허락 없이는 하청업체가 임의로 손댈 수 없다. 그렇다면 원청이 나서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작업방식을 수정해야 할 때는 불법파견 논란이 뒤따른다. 작업 지시가 도급을 넘어 실질적인 지휘·명령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가 이를 원칙적으로 파견의 징표로 보지 않는다 해도, 현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안전보건 조치와 업무 지휘를 구분하는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얽히고설킨 하도급 구조의 사슬

과제에 원청의 역할과 관여 범위를 명확히 하자는 내용을 덧붙였지만, 문제는 원청 울타리 밖의 사외하도급 업체들이다. 이들은 설비 소유권이 있어 개선이 가능해 보이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크다. 설비 교체 비용 마련은 물론, 공사 중 발생하는 생산 차질과 납기 준수 문제 사이에서 갈등한다. 공공 지원이 대안이 될 수 있으나, 지원책을 찾아 신청하고 기관을 설득하는 복잡한 과정을 수행할 인력이 작은 공장에는 없다.

지원기관이 먼저 찾아가는 방식을 제안해 보았으나, 납기 문제는 또 다른 벽이다. 설비를 고치느라 공사가 늦어지면 일을 맡긴 업체와 협의해야 하는데, 그 업체 역시 하청인 구조가 반복된다. 원청에서 하청으로, 다시 그 하청의 하청으로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 모든 업체가 납기에 쫓기다 보니 끝단에 있는 작은 공장의 사정은 외면받기 일쑤다. 사내하청은 권한이 없고, 사외하도급은 경제적·시간적 제약에 묶여 있는 셈이다.

함께 풀어야 할 공동의 숙제

결국 환기설비 하나를 개선하려 해도 전문가, 하청 사업주, 원청, 다단계 협력사, 그리고 정부까지 모두가 얽혀 있다. 위험을 찾는 고민은 누가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되었다. 실질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각자의 권한과 사정을 가진 주체들이 한자리에 모여야 한다. 다행히 지난달 1일 국회를 통과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는 '안전한일터위원회' 설치 근거가 포함되어,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가 모여 정책을 심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만약 위원회 내에 '하도급 분과'가 구성된다면 현재의 고민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산업보건 담당자뿐만 아니라 하도급 거래와 중소기업 지원을 맡은 부처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과제 제목을 '하도급구조 하단의 소규모 사업장 산업보건 서비스 재설계'로 정하며 리포트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실천은 글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이는 혼자 풀 수 있는 숙제가 아니며, 원청과 정부를 포함한 모두의 협조가 필요한 공동의 과제다.

일환경건강센터 사업1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