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택한 글로벌 통신사들, 6G 시장 선점 위해 손잡는다

6세대(6G) 이동통신 시대를 대비해 글로벌 통신사들의 경쟁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과거 가입자 유치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던 기업들이 이제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전략적 동맹을 맺는 추세다. 5G 구축 과정에서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고도 기대 수준의 수익을 확보하지 못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6G 단계에서는 기술 개발 초기부터 공동 사업화 모델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국내 통신 3사에도 중대한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위성 기술과 인공지능(AI)이 결합하는 6G 환경에서는 개별 사업자의 독자적인 기술력이나 투자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순히 국제 표준화 작업에 참여하는 수준을 넘어, 어떤 구체적인 시장을 선점할 것인지와 이를 위해 어떤 파트너와 협력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협력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달 초 미국에서는 T모바일과 버라이즌이 일반 스마트폰을 위성과 직접 연결하는 'Direct-to-Cell'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경쟁 관계인 두 회사가 위성통신 분야의 주파수를 공동으로 활용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유럽에서도 도이치텔레콤, 오렌지, 보다폰, 텔레포니카 등 주요 통신사들이 지난 19일 이동위성서비스(NTN) 주파수를 함께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며 공동 전선을 구축했다. 이들은 외부 사업자로부터 위성망을 공급받는 대신, 지상 설비 구축과 서비스 운영을 맡는 구조를 구상 중이다.

인프라 공유 넘어 서비스 실증까지…확장되는 협력 범위

최근의 협력은 단순한 인프라 공유를 넘어 실제 서비스의 실증 단계로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는 기술 개발 초기부터 실제 수요와 수익성을 미리 검증하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협력의 대상 또한 경쟁 통신사에 국한되지 않고 반도체나 장비 제조사 등으로 다각화되는 양상이다. 미국 T모바일은 엔비디아, 노키아와 협력하여 AI 기술을 시험 중이며, 기존 네트워크에 AI를 접목해 로봇 등 산업용 서비스를 지원하고 이를 새로운 수익원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검증하고 있다. 핀란드의 엘리사 역시 5G 망에서 음성, 데이터, 영상 분석을 동시에 구현하며 2027년 기업용 서비스 출시를 준비 중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통신사들이 이토록 협력에 열을 올리는 이유로 막대한 투자 부담을 꼽는다. 6G는 지상과 위성망의 통합을 강화하고 네트워크 전반에 AI를 적용해야 하기에 개별 기업이 감당해야 할 기술적·경제적 범위가 비약적으로 넓어지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6G가 지상, 해상, 공중을 잇는 연속성을 확보해야 하는 만큼, 공동 연구개발부터 인프라 투자 분담, 해외 수요 확보에 이르기까지 협력의 폭이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5G의 수익성 부진 교훈…'수익 모델' 먼저 만드는 것이 핵심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5G 시대의 뼈아픈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 3G나 LTE 시대에는 통신사가 망을 먼저 구축하면 무선 인터넷이나 영상 서비스 확산에 따라 가입자가 자연스럽게 유입되었다. 반면 5G는 스마트 공장이나 자율주행 등 B2B 시장의 성장을 기대하며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활용 서비스와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아 수익 창출에 난항을 겪었다. 6G에서도 새로운 수익 모델이 나타나기를 막연히 기다리다가는 플랫폼 기업들에 시장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서비스가 확산될수록 네트워크의 가치는 높아지지만, 정작 수익은 고객을 확보한 플랫폼 기업들이 가져가는 구조적 문제가 지적된다. 과거 망 이용료 갈등이 보여주듯, 통신사들이 트래픽 증가에 따른 투자비 분담을 요구하는 사이 플랫폼 기업들은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해왔다. 학계에서는 6G에서도 통신사가 서비스의 등장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한다면 수익 구조 형성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에 따라 기술 개발 초기부터 실제 고객이 지불 용의가 있는 서비스를 발굴하는 실증 작업이 필수적이다. 법무법인 광장의 조대근 전문위원은 저궤도 위성을 활용한 통신 서비스가 지상망 미도달 지역을 커버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곧바로 수요로 직결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2025년 기준 전 세계 22억 명의 미접속자가 존재하더라도, 이들의 실제 이용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요금 체계, 단말기 가격, 현지 인허가 및 유통망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증 데이터 확보와 전략적 '맞춤형 연합'의 필요성

정부 차원의 실증 지원 또한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6G 국제협력을 실질적인 사업 성과로 연결하려면 통신사, 제조사, 연구기관이 함께 움직여 새로운 서비스의 수요를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특히 AI 에이전트가 생성하는 데이터는 기존 미디어 데이터와 달리 전송량이나 이용 패턴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실제 데이터를 통해 필요한 망 용량과 연산 자원, 투자 규모를 산정하는 과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연세대학교 김동구 교수는 기존 미디어 기반 데이터와 달리 AI 에이전트의 데이터 수집 및 전송 특성에 대한 분석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을 언급하며, 상용화 전 실제 데이터를 통한 실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막대한 투자를 집행한 만큼 투자수익률(ROI)을 확보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무조건적인 파트너 확대보다는 전략적인 '맞춤형 연합'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AI나 저궤도 위성 분야에서 기술 의존도를 낮추려는 국가들과의 공동 연구, 혹은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해외 수요를 확보하는 방식이 유효할 수 있다. 조대근 전문위원은 모든 사안에 동일한 파트너를 고집하기보다, 의제별로 상호 보완성과 공동 이익을 기준으로 파트너를 선택하는 것이 현실적이며, 이를 통해 우리 기업이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큰 시장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